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歷代君鑑(1)

역대군감(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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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甘露三年春正月 上以戎狄賓服으로 思股肱之美하야 乃圖畫其人於麒麟閣하고 署其官爵姓名호되 唯霍光不名하고 曰大司馬大將軍博陸侯姓霍氏라하고 其次張安世韓增趙充國魏相丙吉杜延年劉德梁丘賀蕭望之蘇武凡十一人 皆以功德으로 知名當世
是以表而揚之하야 明着中興輔佐하야 列於方叔召虎仲山甫焉이러라


9-2-14 감로甘露 3년(B.C. 51) 봄 정월에 융적戎狄신복臣服해오자 선제가 고굉지신股肱之臣의 아름다운 행실을 생각해서 기린각麒麟閣에 그 사람들의 초상을 그리고 그들의 관작과 성명을 썼는데, 오직 곽광霍光만은 이름을 쓰지 않고 ‘대사마大司馬 대장군大將軍 박륙후博陸侯 곽씨霍氏’라고 쓰고, 그 다음으로 장안세張安世, 병길丙吉, 소망지蕭望之, 소무蘇武 도합 11인이 모두 공덕으로 당시에 이름이 알려졌다.
이 때문에 드러내 이름을 드날려서 중흥中興을 보좌하였다고 밝혀서 의 반열에 올려놓았다.


역주
역주1 韓增 : 韓信의 후손으로 昭帝 때에 前將軍에 이르렀고, 대장군 霍光과 宣帝를 옹립하였다.(≪漢書≫ 권33 〈魏豹田儋韓信傳〉)
역주2 趙充國 : B.C. 137~B.C. 52. 武帝, 昭帝, 宣帝를 섬긴 漢나라의 명장이다. 무제 때 흉노를 격퇴하고 선제 때 營平侯에 봉해졌다. 선제 때 西羌이 반란을 일으키자 70세의 늙은 나이로 나가 싸워서 이를 평정한 다음 屯田을 설치하고 군사를 정돈하여 돌아왔다.(≪漢書≫ 권69 〈趙充國辛慶忌傳〉)
역주3 魏相 : ?~B.C. 59. 漢나라 濟陰 定陶 사람으로, 자는 弱翁이고, 시호는 憲侯이다. 처음에 茂陵令이 되었다가 뒤에 河南太守로 전직되었다. 宣帝 때에 丞相이 되어 여러 부처를 총괄하여 丙吉과 합심하여 정사를 보필하였으므로 선제가 총애하였고 高平侯에 봉해졌다.(≪漢書≫ 권74 〈魏相丙吉傳〉)
역주4 杜延年 : 漢나라 昭帝 때 사람으로, 자는 幼公이고, 아버지는 杜周이다. 원래 대장군 霍光 휘하의 관리였는데, 諫大夫로 있을 때에 上官桀과 燕王 劉旦의 謀反을 고한 공으로 建平侯에 봉해졌다.(≪漢書≫ 권60 〈杜周傳〉)
역주5 劉德 : 漢나라 楚元王의 후손으로, 劉向의 아버지이다. 陽城侯에 봉해졌다.(≪漢書≫ 권36 〈楚元王傳〉)
역주6 梁丘賀 : 前漢 때 학자로, 자는 長翁이고 琅邪 사람이다. 宣帝 때에 점을 쳐서 謀反을 미리 알아서 선제가 화를 면하였다. 벼슬은 太中大夫와 給事中을 거쳐 少府에 이르렀다.(≪漢書≫ 권88 〈儒林傳〉)
역주7 方叔 : 周 宣王 때의 卿士이다. 왕명을 받아 북쪽으로 玁狁을 정벌하고 남쪽으로 荊楚를 정복하여 공로를 세웠다. ≪詩經≫ 〈小雅 采芑〉에 “미련한 저 蠻荊이 준동을 하여 대국을 원수로 삼고 말았도다. 방숙이 나이는 비록 많으나 그 계책은 갸륵하기만 하도다.[蠢爾蠻荊 大邦爲讐 方叔元老 克壯其猶]”라고 하고, 또 “방숙이 일찍이 험윤을 정복하였으므로 만형이 두려워하며 와서 복종하였도다.[征伐獫狁 蠻荊來威]”라고 하였다.
역주8 召虎 : 周 宣王 때 淮南 지방 오랑캐 정벌의 임무를 성공적으로 수행한 召穆公이다.(≪詩經≫ 〈大雅 江漢〉)
역주9 仲山甫 : 周나라의 大夫로, 仲山甫 혹은 仲山父라는 호칭으로 잘 알려져 있다. 魯 獻公의 둘째 아들로, 이름은 전해지지 않으며 중산보는 그의 자이다. 樊 땅에 봉해져 樊仲․樊仲山父․樊侯라고도 불리며, 周 宣王을 잘 보좌하여 주나라의 중흥을 이룬 명재상이다. ≪詩經≫ 〈大雅 烝民〉은 尹吉甫가 그의 덕을 찬미하여 지은 시이다.

역대군감(1) 책은 2024.01.0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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