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歷代君鑑(1)

역대군감(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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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太初元年夏五月 太中大夫公孫卿壺遂太史令司馬遷等言歷紀壞廢하니 宜改正朔이라 兒寬議以爲宜用夏正이라한대
乃詔卿等造漢太初曆하야 以正月爲歲首하고 色尙黃하고 數用五하고 定官名하고 協音律하고 定宗廟百官之儀하야 以爲典常하야 垂之後世하다


8-1-15 태초太初 원년(B.C. 104) 여름 5월에 태중대부太中大夫 태사령太史令 등이 역수曆數의 기강이 무너졌으니 정삭正朔을 고쳐야 한다고 하였는데, 나라의 정삭正朔을 써야 한다고 아뢰었다.
이에 공손경 등에게 명하여 나라의 태초력太初曆을 만들되 정월正月세수歲首로 하고, 황색黃色을 숭상하며, 를 쓰고, 관직의 명칭을 정하고, 음률音律을 맞추고, 종묘와 백관의 의식儀式을 정하여 상법常法으로 삼아 후세에 전해지게 하였다.


역주
역주1 公孫卿 : 漢 武帝 때의 方士로 齊 사람이다.(≪史記≫ 권20 〈孝武本紀〉)
역주2 壺遂 : 漢 武帝 때 학자로, 사마천과 함께 律曆을 정하였고, 벼슬은 詹事에 이르렀고, 사마천으로부터 군자라는 평을 받았다.(≪史記≫ 권108 〈韓長孺列傳〉)
역주3 司馬遷 : B.C. 145~B.C. 86. 前漢의 역사가로, 자는 子長이다. 太史令이던 부친 司馬談의 영향으로 어릴 때부터 많은 글을 읽었다. 20세쯤 郎中이 되어 武帝를 수행하였고, 그 후 태사령이 되어 태산 封禪 의식을 수행하였다. 사마담이 죽으면서 ≪史記≫의 완성을 부탁하였고, 태사령이 되면서 본격적으로 저술에 착수하였으나 흉노의 포위 속에서 부득이하게 투항하지 않을 수 없었던 李陵 장군을 변호하다가 무제의 노여움을 사 宮刑을 받았다. 옥중에서 저술을 계속하다가 무제의 신임을 회복하여 환관의 최고직인 中書令이 되었고, B.C. 91년경 마침내 ≪사기≫를 완성하였다.
역주4 兒寬 : 前漢 千乘 사람으로 ≪尙書≫를 전공하여 歐陽生에게 배웠고, 博士가 되어 孔安國에게 배웠다. 무제 때 左內史가 되어 치적이 뛰어났고, 후에 御使大夫에 임명되었다.(≪漢書≫ 권58 〈公孫弘卜式兒寬傳〉)

역대군감(1) 책은 2024.01.0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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