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三十九年에 戰于千畝하야 王師敗績于姜氏之戎하고 復喪南國之師하고 乃料民於太原한대
仲山甫諫曰 民不可料也니 古者에 不料民而知其多少라 且無故而料民은 天所惡也라 害於民而妨於後嗣니이다 王不聽하고 卒料之하다
諫旣不行하야 王政益懈하니 由是로 小人得以進而君子恥爲用이라
故觀祈父之詩면 則知司馬之職이 非其人矣요 白駒之詩는 則留賢者而賢者不肯留하고 黃鳥之詩는 則處賢者而賢者不與處하니 較之於昔任賢使能之時에 霄壤不侔矣라
5-5-3 39 년에
에서 싸워 선왕의 군대가
의 군대에게 패하고 다시
의 군대를 잃고서
태원太原에서
중산보仲山甫가 간언하기를, “백성의 수를 세어서는 안 됩니다. 옛날에 백성의 수를 세지 않아도 그 수효를 알았습니다. 또 까닭 없이 백성의 수를 세는 것은 하늘이 싫어합니다. 백성에게 해를 끼치고 후사後嗣에게 해가 됩니다.” 하였는데, 선왕이 듣지 않고 끝내 백성의 수를 세었다.
간언이 받아들여지지 않아서 왕정王政이 더욱 해이해지니 이로 말미암아 소인小人들이 벼슬에 나아갈 수 있게 되고 군자君子는 등용되는 것을 수치로 여겼다.
그러므로
옛날에 현자에게 벼슬을 맡기고 능력 있는 자에게 일을 맡기던 때와 비교하면
천양지차天壤之差로 다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