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고전종합DB

歷代君鑑(2)

역대군감(2)

출력 공유하기

페이스북

트위터

카카오톡

URL 오류신고
역대군감(2)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25-1-52
○十六年이라 正月 帝自高宗崩으로 卽欲傳位太子 嘗諭周必大曰 禮莫重於事宗廟而孟享多以病分詣하고 孝莫重於執喪而不得日至德壽宮하니 朕將退休矣
因密賜紹興傳位親札於必大하야 命預草詔하니 專以奉几筵侍東朝爲意 而進必大爲首相하다
二月 帝傳位于皇太子하고 退居重華宮한대 太子卽位하야 尊帝爲至尊壽皇聖帝
帝在位二十七年이요 享年六十八이라


25-1-52
순희淳煕 16년(1189) 정월에 효종은 고종高宗붕어崩御한 뒤 바로 태자太子에게 전위傳位하고자 하였다. 일찍이 에게 효유하기를, “종묘宗廟를 섬기는 것보다 중한 것이 없는데 때 병 때문에 신하들이 나누어 나아가게 하는 경우가 많고 집상執喪보다 중한 것이 없는데 날마다 덕수궁德壽宮에 이르지 못하니, 은 장차 물러나 쉬고자 한다.” 하였다.
인하여 을 은밀히 주필대에게 내려 미리 조서詔書해놓으라고 명하였으니, 오로지 궤연几筵을 받들어 를 모시겠다는 내용이었다. 그렇게 한 다음 주필대를 승진시켜 수상首相으로 삼았다.
2월에 효종이 황태자皇太子에게 전위傳位하고 중화궁重華宮으로 물러나 거처하였는데, 황태자가 즉위하여 효종을 높여 ‘지존수황성제至尊壽皇聖帝’라 하였다.
효종은 재위가 27년이었고, 향년이 68세였다.


역주
역주1 周必大 : 1126~1206. 南宋의 문신으로 자는 子充, 호는 省齋居士이며 자칭 平園老叟라 불렀다. 高宗 紹興 21년(1151) 진사시에 급제하고 벼슬이 좌승상에 이르렀으며 益國公에 봉해졌다. 光宗 때 탄핵을 입어 좌천되자 사직하고 물러났는데, 朱熹는 그의 이러한 처사를 높이 평가하고, 同志에게 보낸 편지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면 周子充(주필대)과 같은 수준에 이를 수 있을 것이다.”라고 격려한 바 있다. 성품이 강직하고 올곧으며 일 처리가 분명하였으며, 陸游ㆍ范成大ㆍ楊萬里 등과 친밀하게 교유하였다.(≪宋史≫ 권391 〈周必大列傳〉)
역주2 孟享 : 帝王의 宗廟祭禮이다. 매년 四孟 즉 孟春ㆍ孟夏ㆍ孟秋ㆍ孟冬에 거행하기 때문에 그렇게 말한 것이다.
역주3 紹興傳位親札 : 高宗이 孝宗에게 傳位하면서 내린 親書를 말한다.
역주4 東朝 : 太后를 지칭한다. 漢나라 태후가 거처한 長樂宮이 朝見을 받던 未央宮의 동쪽에 있었기 때문에 그렇게 부르는 것이다.

역대군감(2) 책은 2024.01.0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우)03140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17길 52 낙원빌딩 411호

TEL: 02-762-8401 / FAX: 02-747-0083

Copyright (c) 2022 전통문화연구회 All rights reserved. 본 사이트는 교육부 고전문헌국역지원사업 지원으로 구축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