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歷代君鑑(2)

역대군감(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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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13
○七月 知諫院韓琦請自今雙日止御後殿視事하니 帝問輔臣以故事한대 張士遜對曰 唐五日一開延英하니 蓋資閒燕하야 以輔養聖神이니이다
帝曰 與夫宵衣旰食으로 固不侔也 前代帝王 靡不初勤政事而後失於逸豫하니 不可不戒也
時帝感小疾하야 太醫數進藥하니 故琦有是請한대 帝訖不從하다


23-1-13
7월에 지간원知諫院 가 지금부터 에는 후전後殿에 납시어 일을 보시기를 청하자 인종이 보신輔臣에게 이에 대한 고사故事를 묻자 장사손이 대답하기를, “나라 때에 5일에 한 번 을 열었으니, 이는 한가하게 지내서 성신聖神을 보양하기 위해서입니다.” 하니,
인종이 이르기를, “한다는 것과 참으로 맞지 않다. 전대의 제왕 중에 처음에는 정사에 부지런하다가 후에 안일해져서 그르치지 않는 사람이 없으니 경계하지 않을 수 없다.” 하였다.
이때 인종이 작은 병을 앓고 있어서 태의太醫가 자주 약을 올렸기 때문에 한기가 이렇게 청한 것인데 인종이 끝내 따르지 않았다.


역주
역주1 韓琦 : 1008~1075. 중국 宋나라의 정치가이자 名將으로, 자는 稚圭, 호는 贛叟이다. 1027년 진사에 합격하였다. 范仲淹과 함께 兵事를 맡아 西夏를 방어하면서 ‘韓范’으로 불렸고, 知州按撫使로서 四川 지방의 굶주린 백성 190만 명을 구제하였다. 1058년에 재상의 자리에 올라 衛國公에 봉해졌고, 이후 仁宗ㆍ英宗ㆍ神宗 세 임금을 섬기면서 10년 동안 재상의 자리에 있었다. 신종 때 靑苗法을 비난하고 거란이 요구해온 영토 할양에 반대하는 등 王安石과 정면 대립하다가 관직에서 물러났다. 사후에 尚書令에 추증되고 英宗의 묘정에 배향되었다. 시호는 忠獻이며, 저서에 ≪孟子贊≫과 ≪安陽集≫이 남아 있다.
역주2 雙日 : 十干 중에서 乙, 丁, 己, 辛, 癸가 들어가는 날로서 柔日이라고도 한다.
역주3 延英殿 : 唐나라 長安에 있는 大明宫 안 便殿의 하나이며, 정례적인 때가 아닌 경우 천자가 연영전에서 대신을 召對하였다.
역주4 宵衣旰食 : 未明에 일어나서 正服하고 해가 진 후에야 저녁 밥상을 받는 것으로 왕이 政事에 부지런함을 비유한 것이며, 정사 때문에 아침저녁으로 근심하는 것을 말한다.(≪舊唐書≫ 권15 〈憲宗本紀下〉)

역대군감(2) 책은 2024.01.0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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