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歷代君鑑(3)

역대군감(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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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2-2
○ 元年 夏四月 二世謂趙高曰 夫人生居世間也 譬猶騁六驥過決隙也이라 吾旣已臨天下矣 欲悉耳目之所好하고 窮心志之所樂하야 以終吾年壽하노니 可乎
高曰 此賢主之所能行이요 而昏亂主之所禁也 雖然이나 有所未可하니 臣請言之호리이다 夫沙丘之謀 諸公子及大臣 皆疑焉하니 而諸公子 盡帝兄이요 大臣 又先帝之所置
今陛下初立 此其屬 意怏怏하야 皆不服하리니 恐爲變이라 臣戰戰慄慄하야 惟恐不終하노니 陛下安得爲此樂乎잇가
二世曰 爲之柰何 趙高曰 陛下嚴法而刻刑하야 令有罪者相坐하야 誅滅大臣及宗室然後 收擧遺民하야 貧者富之하고 賤者貴之하야 盡除先帝之故臣하고 更置陛下之所親信者
此則陰德歸陛下하고 害除而姦謀塞하리니 群臣 莫不被潤澤하고 蒙厚德하고 陛下則高枕肆志寵樂矣리니 計莫出於此니이다
二世然之하야 乃更爲法律하야 務益刻深하야 大臣諸公子有罪 輒下高鞫治之하니 於是 公子十二人 僇死咸陽市하고 十公主矺死於杜하고 財物入於縣官하고 相連逮者不可勝數
公子將閭昆弟三人 囚於內宮하야 議其罪獨後러니 二世使使令將閭曰 公子不臣하니 罪當死 吏致法焉하라
將閭曰 闕廷之禮 吾未甞敢不從賓贊也하며 廊廟之位 吾未甞敢失節也하며 受命應對 吾未甞敢失辭也호니 何謂不臣 願聞罪而死하노라 使者曰 臣不得與謀하니 奉書從事로라
將閭乃仰天大呼者三하고 曰 吾無罪라하고 昆弟三人 皆流涕하고 拔劍自殺하니 宗室震恐이라
公子高欲犇이라가 恐收族하야 乃上書曰 先帝無恙時 臣入則賜食하고 出則乘輿하고 御府之衣 臣得賜之하고 中廐之寶馬 臣得賜之하니 臣當從死而不能하니
爲人子不孝 爲人臣不忠이라 不孝不忠者 無名以立於世 臣請從死하야 願葬驪山之足하노니 唯上幸哀憐之하소서
書上 二世大悅하야 召趙高示之曰 此可謂急乎 趙高曰 人臣當憂死不暇하니 何變之得謀리잇고 二世可其書하고 賜錢十萬以葬하다
復作阿房宮할새 盡徵材士五萬人爲屯衛咸陽하야 令敎射狗馬禽獸하니 當食者多 度不足하고 下調郡縣轉輸菽粟芻槁할새 皆令自齎糧食하고 咸陽百里內 不得食其穀이러라


37-2-2
원년(B.C. 209) 여름 4월에 이세황제가 조고에게 이르기를, “사람이 세상에 사는 것은 비유하자면 여섯 필의 준마가 끄는 수레를 타고 작은 틈새를 지나는 것과 같다. 내가 이미 천하에 임하였으니, 귀와 눈이 하고 싶은 것을 다하고, 심지心志가 즐거워하는 것을 다하여 나의 수명을 마치도록 하고 싶은데 괜찮겠는가?” 하니,
조고가 말하기를, “이것은 어진 임금이 능히 행하는 것이고 혼란한 임금이 금하는 것입니다. 그렇기는 하지만 가하지 않은 것이 있으니 신이 말씀드리겠습니다. 을 여러 공자公子대신大臣들이 모두 의심하고 있는데, 여러 공자들은 모두 황제의 형이고 대신들은 또 선제先帝가 임명한 자들입니다.
지금 폐하께서 처음 즉위하셨는데 이들이 불만을 품어 모두 복종하지 않으니 변란을 일으킬까 염려됩니다. 이에 신은 두려워하며 제대로 마치지 못할까 염려되니, 폐하께서 어떻게 이런 즐거움을 얻을 수 있겠습니까.” 하였다.
이세황제가 이르기를, “어떻게 해야 하는가?” 하니, 조고가 말하기를, “폐하께서 법을 엄하게 하고 형벌을 각박하게 하여 죄가 있는 자들을 연좌시키게 하여 대신과 종실宗室주멸誅滅한 뒤에 유민遺民을 거두어 가난한 자는 부유하게 해주고 천한 자는 귀하게 만들어 선제先帝의 옛 신하를 모두 제거하고 폐하께서 친하고 믿는 자들로 교체하십시오.
이렇게 되면 음덕陰德이 폐하께 돌아와서 가 제거되고 간사한 꾀가 막힐 것이니, 신하들은 은택을 입고 두터운 덕을 입지 않은 자가 없게 되고, 폐하는 베개를 높이 베고 뜻대로 하여 영화롭고 안락할 것이니, 이보다 나은 계책은 없습니다.” 하였다.
이세황제가 그 말을 옳게 여겨 법률을 다시 고쳐서 더욱 각박하도록 힘써서 대신과 공자들 중에 죄가 있으면 곧바로 조고에게 내려서 치죄하게 하였다. 이에 공자 12명이 함양의 저자에서 사형을 당하고, 공주 10명이 두현杜縣에서 사지가 찢겨 죽고, 재물은 현관縣官에 몰수되고, 연좌되어 체포된 자는 헤아릴 수 없었다.
공자 장려將閭 형제 세 사람이 내궁內宮에 갇혀서 그 죄를 논하는데 맨 뒤에 논죄하게 되었다. 이세황제가 사자使者를 시켜 장려에게 명을 전하기를, “공자가 신하의 도리를 지키지 않았으니 죄가 사형에 해당한다. 법리法吏는 법으로 치죄하라.” 하였다.
장려가 말하기를, “궐정闕廷에서 를 거행할 때에 내가 감히 을 따르지 않은 적이 없으며, 낭묘廊廟의 지위에서 내가 감히 예절에 어긋난 적이 없으며, 명을 받아 응대할 때에 내가 감히 말을 잘못한 적이 없으니, 무엇을 가리켜 신하의 도리를 지키지 않았다고 하는가? 죄를 듣고서 죽기를 원하노라.” 하니, 사자가 말하기를, “신은 모의에 참여하지 못하니 조서를 받들어 따를 뿐입니다.” 하였다.
장려가 하늘을 우러러 크게 세 번 부르짖고서 “나는 죄가 없다.”라고 하고, 형제 세 사람이 모두 눈물을 흘리고 칼을 빼서 자살하니 종실宗室들이 두려워하였다.
공자 가 달아나려다가 가족들이 잡혀 들어갈까 두려워서 상서上書하기를, “선제先帝께서 살아 계실 때에 신이 들어가면 음식을 내리셨고 나가면 승여乘輿를 내주셨으며, 어부御府에 있는 옷을 신은 하사받았고, 중구中廐보마寶馬를 신이 하사받았으니, 신이 의당 따라 죽어야 했으나 그렇게 하지 못했습니다.
자식이 되어서는 효도하지 못했고 신하가 되어서는 충성하지 못했습니다. 효도하지 못하고 충성하지 못한 자는 세상에 설 명분이 없습니다. 신은 선제를 따라 죽어서 여산驪山 아래에 묻히기를 원하노니 황상께서는 불쌍히 여겨주소서.” 하였다.
상서가 올라가자 이세황제가 크게 기뻐하여 조고를 불러서 보이고 말하기를, “이는 다급해졌다고 할 수 있겠는가?” 하니, 조고가 말하기를, “신하로서 죽음을 근심할 겨를도 없는데 어찌 변란을 도모할 수 있겠습니까.” 하니, 이세황제가 그 상서를 옳게 여겨 10만 문을 하사하여 장사 지내게 하였다.
다시 아방궁阿房宮을 지을 때에 5만 명을 모두 징발하여 함양에 주둔하여 지키게 하고 이들에게 활쏘기를 익히고 군견軍犬군마軍馬금수禽獸를 조련하게 하니, 먹여야 할 자가 많았다. 식량이 부족하리라는 것이 예상되므로 에 명을 내려 곡식과 꼴을 함양에 보내오도록 하였는데, 운반하는 인부들은 모두 자기가 먹을 식량을 가져오게 하고, 함양 주위 300리 안에 있는 곡식은 먹을 수 없게 하였다.


역주
역주1 沙丘에서 도모한 일 : B.C. 210년 시황제가 천하를 순행할 때에 趙高와 李斯와 둘째 아들 胡亥가 수행하였다. 平原津에 이르러 병이 났는데, 병이 심해지자 장자인 扶蘇가 帝位를 이으라는 遺詔를 내리고 玉璽를 찍어서 봉하였다. 沙丘의 平臺에 이르러 시황제가 죽었는데, 조고와 이사와 호해가 비밀에 붙이고 發喪하지 않고서 封書를 없애고 거짓으로 유조를 만들어 호해를 태자로 세우고 부소와 蒙恬을 賜死하였다. 함양에 돌아와서야 비로소 발상하고, 호해가 제위에 올랐던 일을 가리킨다.(≪史記≫ 권6 〈秦始皇本紀〉)
역주2 賓贊 : 典禮를 거행할 때에 儀式을 인도하는 사람이다.
역주3 材士 : 强弩를 발로 밟고서 시위를 당길 수 있는 건장하고 힘이 있는 병사[材官蹶張之士]를 가리킨다.(≪史記正義≫ 권6 〈秦始皇本紀〉)
역주4 (二)[三] : 저본에는 ‘二’로 되어 있으나, ≪史記≫ 권6 〈秦始皇本紀〉에 의거하여 ‘三’으로 바로잡았다.

역대군감(3) 책은 2024.01.0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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