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乙巳三月에 起居注宋濂이 乞歸省金華하니 上賜金幣而遣之라 濂還金華하야 進表謝하고 復致書世子하야 勸以進修한대
上覽書喜하야 召世子諭之曰 吾自幼極艱難이어늘 今爾曹冠服華麗하고 飮食甘美하며 安居深宮하니 不思勇於進修면 是自棄也라 宋起居之言有益하니 爾其味之하라하고
復遣使至金華하야 賜書奬諭濂하고 賜以綺帛하고 仍令世子親致書以報하니 人皆歎上待士之盛이라
을사년(1365) 3월에
기거주起居注 송염宋濂이
금화金華로 돌아가
성묘省墓하고자 한다고 청하니, 태조가 금과 비단을 하사하여 보냈다. 이에 송렴이 금화로 돌아가
표문表文을 올려 사례하고 다시
세자世子에게 편지를 보내
을 권면하였는데,
태조가 그 편지를 보고 기뻐하여 세자世子를 불러 유시하기를, “나는 어려서부터 매우 곤궁하였는데, 지금 너희들은 관면冠冕과 의복衣服이 화려하고 음식飮食이 달고 맛있으며 깊은 궁중에서 편안히 생활하고 있으니, 진덕수업進德修業에 용맹정진하기를 생각하지 않는다면 이는 자신을 버리는 짓이다. 송宋 기거起居의 말이 유익有益하니 너는 잘 생각해보도록 하라.” 하였다.
다시 금화에 사자를 보내 친서親書를 하사하여 송렴을 장려하여 효유한 다음 기백綺帛을 하사하고, 이어 세자로 하여금 직접 편지를 보내 답장하게 하니, 사람들이 모두 유사儒士를 대우하는 태조의 성의에 탄복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