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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非子集解(1)

한비자집해(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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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비자집해(1)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2-48 韓居中國하야 地不能滿千里로되 而所以得與諸侯班位於天下하야 君臣相保者 以世世相敎事秦之力也일새니이다
○王先謙曰 韓自懿侯後 事見世家者 如昭侯十一年 如秦하고 宣惠王十九年 以太子倉質秦하고
襄王十年 太子嬰朝秦하고 釐王時 兩會秦王하니 非不世世事秦이나
而無世不被秦兵이요 常出兵佐秦伐諸侯 其得秦救 惟釐王二十三年一役而已
所謂戮力一意以不相侵 特策士之游談이니 初無關於事實也


한나라가 중원中原에 있으면서 땅이 사방 천 리를 채우지 못하지만, 천하에 제후들과 같은 반열에 끼어서 군주와 신하가 함께 생존할 수 있었던 까닭은 대대로 가르쳐서 진나라를 섬겼기 때문입니다.
왕선겸王先謙나라가 〈나라를 섬긴 것은〉 의후懿侯 이후로부터이니 이 일이 ≪사기史記≫ 〈한세가韓世家〉에 보인다. 이를테면 소후昭侯 11년에 진나라에 갔고, 선혜왕宣惠王 19년에 태자 이 진나라에 인질로 갔으며,
양왕襄王 10년에 태자 이 진나라에 조현朝見하였고, 이왕釐王 때 두 차례 진나라 왕과 회합하였으니, 대대로 진나라를 섬기지 않은 적이 없었다.
그러나 어느 때고 진나라 군대의 침공을 겪지 않은 적이 없었고 늘 군대를 내어 진나라가 제후를 치는 것을 도왔다. 진나라에게 구원을 받은 것은 오직 희왕 23년 한 차례뿐이다.
이른바 ‘힘을 합치고 뜻을 하나로 모아 서로 침략하지 않았다.’는 것은 단지 책사策士가 유세하여 하는 말이지, 애초에 사실과는 무관하다.



한비자집해(1) 책은 2019.10.25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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