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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非子集解(1)

한비자집해(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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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비자집해(1)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3-26 하고 니이다 此十數人者 皆世之仁賢忠良有道術之士也언마는 不幸而遇悖亂闇惑之主而死니이다
然則雖賢聖이라도 不能逃死亡避戮辱者 何也잇가 則愚者難說也 故君子難言也니이다
○先愼曰 乾道本 難言作不少 顧廣圻云 今本 不少作難言하니 案此句下有脫文이라하니라
先愼案 君子難言 文甚明白易曉하니 今從之


재여宰予전상田常에게 죽음을 면치 못하였고 범저范雎나라에서 갈비뼈가 부러졌습니다. 이들 십 수 명은 모두 세상에서 어질고 현명하며 충성스럽고 선량하여 도술에 통달한 선비들이었건만 불행하게도 패란하고 미혹된 군주를 만나 죽임을 당했습니다.
그렇다면 비록 현인이나 성인일지라도 죽임에서 달아나거나 도륙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은 어째서이겠습니까. 이는 어리석은 자를 설득하기가 어려워서이니, 그래서 군자는 진언進言하기를 어렵게 여기는 것입니다.
왕선신王先愼건도본乾道本에 ‘난언難言’이 ‘불소不少’로 되어 있다. 고광기顧廣圻는 “금본今本에 ‘불소不少’가 ‘난언難言’으로 되어 있으니 잘못되었다. 살펴보건대 이 아래에 탈락된 글이 있다.”라고 하였다.
내가 살펴보건대 ‘군자난언君子難言’은 문장이 매우 명백하여 이해하기 쉬우니 지금은 이것을 따랐다.


역주
역주1 宰予不免於田常 : 宰予는 孔子의 제자로, 田常이 齊나라 簡公을 시해하여 권력을 빼앗자 이에 맞서다가 죽임을 당하였다.
역주2 范雎(저)折脅於魏 : 范雎가 일찍이 魏나라에서 中大夫 須賈를 섬겼는데, 위나라 승상 魏齊가 수가의 잘못된 말을 듣고 범저를 때려 갈비가 부러지고 이가 부러져 거의 죽을 뻔하였다. 그 후 범저는 張祿으로 성명을 바꾸고 鄭安平의 주선으로 秦 昭王의 사자 王稽를 따라 秦나라로 가서 재상이 되었다. 관련 내용은 ≪史記≫ 권79 〈范雎列傳〉에 보인다.

한비자집해(1) 책은 2019.10.25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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