注
○張文虎曰 服
은 當依策作伏
이라 史記楚世家
에 頃襄王二十一年
에 秦將
遂拔我郢
하야 燒先王墓
하고 夷陵
하니
楚襄王兵散
하야 遂不復戰
하고 東北保於陳城
注+六國表에 作王亡走陳이라하고 白起列傳에 作東走徙陳이라하니라이라하다 故云伏
이니 謂竄伏也
라
又曰 此秦昭襄王二十九年事니 秦策에 以此篇爲張儀說秦王文이라 案儀以秦武王元年에 去秦入梁하니 在前三十三年矣라
又下文
에 稱秦攻魏
하야 軍大梁
이라가 白起擊魏華陽軍
이라하고 及
하얀 更在其後
하니 足以明國策之誤矣
라
초왕과 신하들이 도망쳐 동쪽의 진성陳城에 가서 지켰습니다.
注
○장문호張文虎:‘복服’은 응당 ≪전국책戰國策≫ 〈진책秦策〉에 의거하여 ‘복伏’이 되어야 한다. ≪사기史記≫ 〈초세가楚世家〉에 “경양왕頃襄王 21년(B.C.278)에 진秦나라 장군 백기白起가 마침내 우리의 영도郢都를 함락하고서 선왕先王의 무덤을 불태우고 왕릉王陵을 파헤쳐 평지로 만드니,
초 양왕楚 襄王은 군사가 흩어져서 마침내 다시 전쟁하지 못하고 동북쪽으로
진성陳城에 가서 지켰다.” 하였다.
注+≪사기史記≫ 〈육국표六國表〉에 ‘왕망주진王亡走陳(왕이 도망쳐 진성으로 달아났다.)’으로 되어 있고, ≪사기史記≫ 〈백기열전白起列傳〉에 ‘동주사진東走徙陳(동쪽으로 달아나 진성陳城으로 옮겼다.)’으로 되어 있다. 그러므로 〈≪
전국책戰國策≫ 〈
진책秦策〉에〉 ‘
복伏’이라 한 것이니, ‘
찬복竄伏(도망쳐서 숨음)’임을 말한 것이다.
장문호張文虎:이 일은 진 소양왕秦 昭襄王 29년(B.C.278)의 일인데, ≪전국책戰國策≫ 〈진책秦策〉에 이 편篇을 장의張儀가 진왕秦王에게 유세遊說한 글이라 하였다. 살펴보건대 장의는 진 무왕秦 武王 원년(B.C.310)에 진나라를 떠나 대량大梁(위魏나라의 도읍)에 들어갔으니, 이보다 33년 전의 일이다.
또 〈〈진책秦策〉의〉 아래 글에 “진나라가 위魏나라를 공격하여 대량大梁에 주둔하였다가 백기가 위나라 화양華陽의 군대를 공격하였다.” 하였고, 장평長平의 전쟁에 있어서는 더욱 그 뒤에 있었던 일이니, ≪전국책戰國策≫ 〈진책秦策〉의 오류를 증명하기에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