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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非子集解(3)

한비자집해(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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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비자집해(3)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31-22 參疑之勢 亂之所由生也 故明主愼之하나니라 是以하고하며
○先愼曰 田常 下說作田恒하니 後人避諱改也


君主와 신하의 세력이〉 서로 대등한 형세는 禍亂이 일어나는 원인이기 때문에 賢明한 군주는 〈이런 형세를〉 신중히 대처한다. 이 때문에 나라의 驪姬太子 申生을 죽였고, 鄭君夫人은 독약을 써서 〈정군을 죽였으며,〉
나라의 州吁는 그의 군주 을 시해하였고, 公子 東周를 빼앗았으며, 王子 이 매우 총애를 받자 商臣이 결국 叛亂을 일으켰고, 嚴遂韓廆가 권력을 다투자 哀侯가 결국 자객에게 살해당했으며,
田常闞止戴驩皇喜의 세력이 서로 대등하여 宋君( 桓侯)과 簡公이 시해된 것이다.
王先愼:‘田常’은 아래의 에 ‘田恒’으로 되어 있으니, 후세 사람이 〈 文帝 劉恒의〉 이름을 피하여 고친 것이다.


역주
역주1 晉驪姬殺太子申生 : 춘추시대 晉 獻公의 부인인 驪姬가 太子인 申生을 참소하여 살해하고 자기가 낳은 아들 奚齊를 태자로 세운 사건이다. 여희는 驪戎 출신의 여자로 헌공에게 총애를 받자 신생을 모함하여 죽이고 公子 重耳와 夷吾 등을 축출하였다.
역주2 鄭夫人用毒藥 : 鄭夫人이 자기의 아들이 太子 자리를 잃을까 염려하여 독약으로 임금을 죽인 사건이다.
역주3 衛州吁殺(시)其君完 : 춘추시대 衛나라의 公子 州吁가 異腹兄인 桓公(完)을 시해하고 自立한 사건이다. 주우는 衛 莊公의 庶子이다.
역주4 公子根取東周 : 公子 根은 周 威公의 작은 아들로 東周 惠公이라고 부른다. 위공은 河南 桓公 揭의 아들인데 환공이 작은 아들 근을 鞏에 봉하여 周王을 받들게 한 후 東周라 하고, 하남은 西周라 하였다 한다.
역주5 王子職甚有寵而商臣果作亂 : 王子 職은 楚 成王의 庶子이다. 성왕이 아들 商臣을 太子로 세웠다가 다시 바꾸려고 하자 상신이 亂을 일으켜 성왕을 시해하였다.
역주6 嚴遂韓廆(외)爭而哀公 : 嚴遂는 韓 哀侯의 相國이고, 韓廆는 애후에게 신임받는 신하였다. 哀公은 곧 哀侯이다.
역주7 田常 : 춘추시대 齊나라 大夫 田恒이다. 그의 先祖 陳나라 公子 完이 제나라에 망명하여 姓을 田氏로 바꾸었는데, ≪春秋左氏傳≫에는 陳恒으로, ≪史記≫에는 田常으로 기록되어 있다. 齊 簡公을 시해하고 平公을 세워 제나라의 정권을 독점하였고, 그의 증손 田和가 齊 康公을 축출하고 自立하여 제나라를 차지하였다. 시호가 成子이기 때문에 田成子로도 불린다.
역주8 闞止 : 춘추 말기 齊나라의 재상으로, 字는 子我이다. 齊 簡公에게 총애를 받아 국정을 맡았으나 田常(田恒)이 政變을 일으켰을 때 간공과 함께 살해당하였다.
역주9 戴驩 : 춘추시대 宋 桓侯(桓公) 때 太宰를 역임하였다. 司城 皇喜와 권력을 다투어 서로 공격함으로써 송나라가 衰落하게 되었다. ‘驩’은 ‘讙’으로도 쓴다.
역주10 皇喜 : 춘추시대 宋 桓侯 때의 司城이다. 字는 子罕이다. 당시 執政이었던 太宰 戴驩과 정권을 다투다가 마침내 桓侯를 시해하고 스스로 즉위하여 宋君이 되었다.
역주11 宋君簡公 : 宋君은 宋 桓侯로 이름은 辟(피)이다. 7년 동안 재위하면서 사치를 일삼고 황당한 행위를 많이 하여 司城 子罕에게 시해당하였다.
簡公은 齊 悼公의 아들로 이름은 任이다. 田常과 闞止를 등용하여 左右相으로 삼았으나, 전상이 간공과 감지를 죽이고 대권을 장악하였다.

한비자집해(3) 책은 2020.12.29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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