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4 此臣非之所以難言而重患也니이다 故度量雖正이라도 未必聽也며 義理雖全이라도 未必用也니이다
大王若以此不信하시면 則小者以爲毁訾誹謗하고 大者患禍災害死亡及其身하리이다
故此三大夫豈不賢哉리잇가 而三君不明也니이다 上古有湯은 至聖也요 伊尹은 至智也니이다
夫至智說至聖
이나 然且七十說而不受
하야 하야 昵近習親
하니 而湯乃僅知其賢而用之
니이다
故曰 以至智說至聖이라도 未必至而見受라하니 伊尹說湯是也니이다
以智說愚
라도 必不聽
이니 文王說紂是也
니이다 故
하고
注
○先愼曰 乾道本에 無而紂二字라 顧廣圻云 藏本今本에 紂下有而紂二字라하니 今據補라
注
先愼曰 左隱五年에 邢人伐翼하니 翼侯奔隨라하고 六年에 納諸鄂謂之鄂侯라하니 翼鄂地近이라 故相通稱이라
史記楚世家에 熊渠中子紅爲鄂王이라하고 吳越春秋句踐陰謀外傳에 號翼侯라하니 可借證翼鄂通稱이라
이것이 신 한비가 진언하기를 어렵게 여겨 신중히 하고 두려워하는 이유입니다. 그러므로 헤아림이 비록 올바르더라도 반드시 받아들여지는 것은 아니며, 의리가 비록 완전하더라도 반드시 쓰이는 것은 아닙니다.
대왕大王께서 만약 이러한 이유로 진언하는 말을 믿지 않으신다면 작게는 〈진언한 자를〉 비방하고 헐뜯는 경우가 생기며 크게는 환난과 재앙, 죽음이 진언한 자의 몸에 미치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오자서伍子胥는 모략에 뛰어났지만 오왕吳王이 그를 죽였고, 중니仲尼는 언변에 뛰어났지만 광匡 지역 사람들이 그를 포위했으며, 관이오管夷吾는 실로 현인이었지만 노魯나라가 그를 가두었습니다.
그러니 이 세 사람이 어찌 현명하지 못해서이겠습니까. 이는 세 군주가 총명하지 못해서입니다. 상고시대에 탕왕湯王은 지극한 성인이었고 이윤伊尹은 지극히 지혜로운 자였습니다.
지극히 지혜로운 자가 지극한 성인을 설득하였으나 일흔 번이나 설명을 하였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자 몸소 솥과 도마를 잡고 요리사가 되어 가까이에서 친숙하게 지내니, 그런 다음에야 탕왕이 겨우 그의 현명함을 알아보고 등용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지극히 지혜로운 자가 지극한 성인을 설득해도 반드시 받아들여지는 것은 아니다.”라고 하니 이윤이 탕왕을 설득한 경우가 이것입니다.
지혜로운 자가 어리석은 자를 설득해도 반드시 받아들여지지 않으니
문왕文王이
주紂를 설득한 경우가 이것입니다. 그러므로 문왕이
주紂를 설득하였지만
주紂는 그를 가두었고
伊尹(≪萬古際會圖像≫) 周 文王(≪萬古際會圖像≫)
注
○왕선신王先愼:건도본乾道本에는 ‘이주而紂’ 두 자가 없다. 고광기顧廣圻는 “장본藏本과 금본今本에는 ‘주紂’ 아래에 ‘이주而紂’가 있다.”라고 하니 지금 이에 의거하여 보충하였다.
注
○고광기顧廣圻:≪전국책戰國策≫과 ≪사기史記≫에는 모두 ‘악후鄂侯’로 되어 있다.
왕선신王先愼:≪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 은공隱公 5년 조에 “형인邢人이 익翼을 정벌하니 익후翼侯가 수隨로 달아났다.”라고 하였고, 6년 조에 “악鄂에 머물게 하니 ‘악후鄂侯’라 하였다.”라고 하니 익翼과 악鄂은 지역이 가까워 서로 통칭한 것이다.
≪사기史記≫ 〈초세가楚世家〉에 “웅거熊渠의 둘째 아들 웅홍熊紅을 악왕鄂王으로 삼았다.”라고 하였고 ≪오월춘추吳越春秋≫ 〈구천음모외전句踐陰謀外傳〉에 “익후翼侯라 불렀다.”라고 하니 익翼과 악鄂을 통칭했음을 증명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