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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非子集解(3)

한비자집해(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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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비자집해(3)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26-15 如此 故圖不載 不擧이며 書不著子胥 不明니라
○王先謙曰 此宰予謂齊簡公臣이니 與田成爭權而死者 蓋周世有二說하니
或云闞止 或卽以爲孔子弟子宰我也 六卿 晉臣이라 言無爭奪亡滅之禍 故圖書不得而載著


이와 같았다면 따라서 圖書宰予는 실리지도 않았을 것이고, 나라 여섯 대부도 거론되지 않았을 것이며, 문헌에 伍子胥도 기록되지 않았을 것이고, 夫差도 밝게 드러나지 않았을 것이다.
王先謙:여기 宰予 簡公의 신하로, 田成과 권력을 놓고 다투다가 죽은 자이다. 〈宰予에 대해〉 나라 때 두 가지 설이 있었는데,
어떤 이는 闞止라고 하고 어떤 이는 바로 孔子의 제자 宰我라고 한다. 六卿나라의 신하들이다. 권력을 쟁탈하고 나라가 멸망하는 화가 없으므로 圖書와 문헌에 실리고 기록될 수 없다는 말이다.


역주
역주1 宰予 : 춘추시대 魯나라 사람으로, 자는 子我 또는 宰我이다. 孔門十哲 중 한 사람으로, 언변에 능했다. 齊나라에서 벼슬하여 臨淄의 대부가 되었으나, 田常의 난에 죽임을 당하였다고 한다. ≪史記≫ 〈仲尼弟子列傳〉에 “宰予가 臨菑의 대부가 되어 田常과 난을 일으켰다.[宰予爲臨淄大夫 與田常作亂]”는 말이 있는데, 司馬貞의 ≪史記索隱≫에는 “살펴보건대 ≪春秋左氏傳≫에는 재아와 전상이 난을 일으켰다는 문장이 없다. 그러나 闞止의 字가 子我인데 총애를 다툼으로 인하여 드디어 陳恒에게 피살되었다. 아마 자가 재여와 같기 때문에 이로 인한 오류로 생각된다.[按左氏傳 無宰我與田常作亂之文 然有闞止字子我而因爭寵遂爲陳恒所殺 恐字與宰予相涉因誤云然]”고 하였다. 이것으로 보면 본문의 宰予는 공자 제자 宰予가 아닌 闞止로 볼 수도 있다.
역주2 六卿 : 晉나라에서 실권을 장악하였던 范‧中行‧智‧韓‧魏‧趙氏의 여섯 대부를 가리킨다. 후에 趙‧韓‧魏氏가 진나라를 나누어 각기 나라를 세웠고, 이들이 정식으로 제후로 인정을 받음에 따라 진나라는 멸망하였다
역주3 夫差 : 춘추시대 吳나라 왕 闔閭의 아들로, 합려의 뒤를 이어 오나라 왕이 되었다. 아버지가 越나라 왕 句踐에게 패하여 죽자, 그 유언을 받들어 섶나무 위에서 자며 복수를 다짐하였다. 결국 월나라를 공격하여 대승을 거두고 굴복시켰으나, 뒤에 쓸개를 핥으면서 부국강병에 힘쓴 구천에게 패하여 자살하였다.(≪史記≫ 〈越王句踐世家〉)

한비자집해(3) 책은 2020.12.29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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