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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非子集解(3)

한비자집해(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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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16 之略廢 盜跖之心伏이니라 人主甘服於玉堂之中하되 而無瞋目切齒傾取之患이요
○先愼曰 拾補 瞋作瞑이라 盧文弨云 瞑 張凌本 作瞋이라하니라 先愼案 作瞋者是 莊子說劍篇 瞋目而語難이라하니라


孫子吳起兵略도 쓸모없어 폐기되었을 것이고 盜跖의 탐욕도 억눌려 드러나지 않았을 것이다. 군주는 궁궐 안에서 맛있는 음식을 먹고 좋은 옷을 입고 지내지만 눈을 부릅뜨거나 이를 갈며 나라가 뒤집어져 탈취될 근심은 없을 것이며,
王先愼:≪群書拾補≫에 ‘’은 ‘’으로 되어 있다. 盧文弨는 ‘’은 張本凌本에 ‘’으로 되어 있다.”라고 하였다. 내가 생각하건대 ‘’으로 되는 것이 옳다. ≪莊子≫ 〈說劍篇〉에 “瞋目而語難(눈은 부릅뜨고 힐난하는 말을 하다.)”이라고 하였다.


역주
역주1 孫吳 : 춘추전국시대 이름난 병법가 孫武‧孫臏과 吳起를 가리킨다. 孫武는 춘추시대 齊나라 사람으로 吳나라 왕 闔閭를 도와 군사를 양성하였다. 저서에 병서 ≪孫子≫ 현존한다. 孫臏은 孫武의 후손으로, B.C.367년에 魏나라 군사와 싸워 크게 이기고, B.C.353년에 趙나라를 도와 위나라 군사를 격파하였다. ≪孫臏兵法≫을 저술하였다고 하지만 전하지 않는다. 吳起는 전국시대 衛나라 사람으로, 처음에 魯나라의 장수가 되어 齊나라 군대를 격파하였고, 뒤에 魏 文侯의 장수가 되어 秦나라와 韓나라의 공격을 막아내었다. 魏 文侯가 죽자 다시 楚 悼王의 정승이 되어 百越‧三晉‧秦을 정벌하였다. 楚 悼王이 죽은 뒤에 貴戚大臣의 원망을 사서 피살되었다.(≪史記≫ 〈吳起列傳〉)

한비자집해(3) 책은 2020.12.29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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