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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非子集解(4)

한비자집해(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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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비자집해(4)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36-77 或曰 桓公 不知仁義 夫仁義者 憂天下之害하고 趨一國之患하야 不避卑辱이니 謂之仁義
以中國爲亂하야 道爲宰(于)[干]湯하고 以秦爲亂하야 道爲虜(于)[干]이라
○先愼曰 乾道本 虜上無爲字 顧廣圻云 以中國爲亂 句絶이니 下句同이라
兩于字 當作干이라
藏本今本 虜上有爲字라하니라 先愼按 有爲字 是 今據補하노라
由也 道爲虜干穆公 由爲虜干穆公이라 難二篇 伊尹自爲宰干湯하고 百里奚自爲虜干穆公注+① 自 亦由也 是其證이라
卽干之誤


혹자는 다음과 같이 논평論評하였다. “환공桓公인의仁義를 알지 못하였다. 인의라는 것은 천하의 를 걱정하고 한 나라의 환난에 달려가 비천함과 치욕을 피하지 않는 것이니 이를 인의라고 한다.
그러므로 이윤伊尹은 중국이 어지럽게 되었기 때문에 요리사가 됨을 따라 임금에게 등용되길 구하였고, 백리해百里奚나라가 어지럽게 되었기 때문에 노예가 됨을 따라 목공穆公에게 등용되길 구하였다.
왕선신王先愼건도본乾道本에 ‘’자 위에 ‘’자가 없다. 고광기顧廣圻는 “‘이중국위난以中國爲亂’에서 가 끊어지니 아래 구도 마찬가지다.
두 ‘’자는 응당 ‘’자가 되어야 한다.
장본藏本금본今本에 ‘’자 위에 ‘’자가 있다.”라고 하였다. 내가 살펴보건대 ‘’자가 있는 것이 옳으니 지금 이에 의거하여 보충하였다.
’자는 ‘(따르다)’의 뜻이니 ‘도위로간목공道爲虜干穆公’은 ‘유위로간목공由爲虜干穆公’이다. ≪한비자韓非子≫ 〈난이편難二篇〉에 “이윤자위재간탕伊尹自爲宰干湯 백리해자위로간목공百里奚自爲虜干穆公(이윤伊尹은 요리사가 됨을 따라 임금에게 등용되길 구하였고, 백리해百里奚는 노예가 됨을 따라 목공穆公에게 등용되길 구하였다.注+自는 또한 由(따르다)의 뜻이다.)”이 그 증거이다.
’는 ‘’의 잘못이다.


역주
역주1 伊尹 : 商나라 湯王의 재상이다. 이름은 摯인데 阿衡․保衡이라고도 한다. 有莘國의 들에서 농사짓다가 탕왕에게 시집가는 有莘氏 딸의 媵臣으로 따라가서 요리하는 일로 탕왕에게 가까워지고, 탕왕을 도와 夏桀을 멸한 뒤 재상이 되어 商나라를 강성하게 하였다. 50여 년 동안 湯王․外丙․仲壬․太甲․沃丁 등 5대 王을 섬기고 나이 100세에 죽었다 한다.
역주2 百里奚 : 春秋時代 虞나라의 賢臣으로 불우하게 떠돌아다니다가 잘못 楚나라에 억류되었는데, 이때 秦 穆公이 그의 어질다는 소문을 듣고는 암양 가죽 다섯 벌을 초나라 사람에게 주고 억류된 백리해를 데려와 정승으로 삼았다. 그래서 백리해를 五羖大夫(오고대부)라고도 한다.
역주3 穆公 : 春秋時代 秦나라 君主로 姓은 嬴, 이름은 任好, 秦 德公의 작은 아들이다. 즉위 후 百里奚․蹇叔․由余 등의 賢臣을 중용하여 晉나라와의 전쟁에서 크게 승리하였고, 梁나라․芮나라․滑나라 등을 겸병하여 국력을 크게 떨쳤다. 春秋五霸 중의 한 사람으로 일컬어진다.

한비자집해(4) 책은 2022.12.25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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