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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非子集解(1)

한비자집해(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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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비자집해(1)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1-40 東以弱齊燕하고 中以凌三晉이니 然則是一擧而霸王之名 可成也 四隣諸侯可朝也어늘
而謀臣不爲하고 引軍而退하야 復與魏氏爲和하야
○王先謙曰 據史記六國表魏世家하면 秦昭王三十二年 魏安釐王二年也
秦軍大梁下하니 韓來救하야 予秦以和하다 又穰侯傳 圍大梁하야 納梁大夫之說하야 而罷梁圍러니
明年 魏背秦하고 與齊從親이라하니 卽其事也


그리하여 동쪽으로 나라와 나라를 약화시키고 중앙으로 삼진三晉을 침범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렇게 하였다면 일거에 패주霸主제왕帝王공명功名을 이룰 수 있고, 사방의 제후諸侯조현朝見하게 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진나라의 모신謀臣이 이렇게 하지 않고 군대를 이끌고 퇴각하여, 다시 위나라 사람과 화친하여
왕선겸王先謙:≪사기史記≫ 〈육국표六國表〉와 〈위세가魏世家〉에 의거하면 진 소왕秦 昭王 32년(B.C.275)은 위 안희왕魏 安釐王 2년이다.
나라가 대량大梁을 공격하니 나라가 구원하러 와서 진나라에 온읍溫邑을 주고 강화講和하였다. 또 〈양후열전穰侯列傳〉에 “양후穰侯가 대량을 포위하였다가 ()의 대부 수가大夫 須賈의 설득을 받아들여 대량의 포위를 풀었다.
그런데 이듬해 나라가 진나라를 배반하고 나라와 종친從親(합종合從)했다.” 하였으니 여기서 말한 바로 그 일이다.


역주
역주1 : 원래는 周나라 王畿 안에 있던 小國이었으나 이 당시에는 魏나라 邑이었다. 지금의 河南省 溫縣이다.
역주2 穰侯 : 전국시대 秦나라 魏冉의 封號이다. 위염은 본래 楚나라 계통의 羋姓(미성)으로 秦 昭王의 어머니 宣太后의 異父 아우이다. 소왕 때 태후의 신임을 얻어 네 번이나 相이 되었다. 白起를 장군으로 등용하여 關東 諸侯의 세력을 약화시키고 진나라의 국력을 강성하게 하였다.
역주3 須賈 : 전국시대 魏나라 사람이다. 자기의 手下에 있던 范雎를 오해하고 죄에 빠지게 하였으나, 후일 秦나라에 사신으로 갔을 때 진나라의 재상이 된 범저가 그를 용서하고 돌려보내주었다.

한비자집해(1) 책은 2019.10.25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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