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자천宓子賤과 서문표西門豹는 다투지 않았는데도 남의 손에 죽임을 당했고, 동안우董安于는 죽어서 시신이 시장에 널렸고
西門豹(≪古聖賢像傳略≫)
注
宰予(≪聖賢像讚≫)
○왕선신王先愼:‘안우安于’는 ≪한비자韓非子≫ 〈십과편十過篇〉과 〈내저설 상內儲說 上칠술편七術篇〉에 ‘알우閼于’로 되어 있고 〈관행편觀行篇〉에는 ‘안安’으로 되어 있으니 여기와 마찬가지이다. 살펴보건대 ‘안安’과 ‘알閼’은 고자古字에서 통용이다.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 정공定公 13년 조에는 ‘안安’으로 되어 있고, ≪회남자淮南子≫ 〈도응훈道應訓〉에는 ‘알閼’로 되어 있으니 이것이다. 오직 ≪전국책戰國策≫ 〈조책趙策〉에는 ‘안安’과 ‘알閼’이 함께 쓰여 있으니 잘못된 것이다.
역주
역주1宓(복)子賤 :
宓子賤은 孔子의 제자로 성품이 매우 仁愛하여 일찍이 單父(선보)를 다스릴 적에 항상 거문고만 타고 堂 아래를 내려가지 않았으나 선보가 잘 다스려졌다고 한다.
역주2西門豹 :
전국시대 魏나라 사람이다. 그가 鄴의 수령으로 있을 때 그 지방 풍속이 무당을 믿어 해마다 돈을 거두어서 민가의 여자를 선출하여 하수에 던지며 이를 河伯에게 시집보낸다고 했다. 이 일로 인하여 그 지방 백성들이 괴로워했는데, 서문표가 그 무당을 하수에 던짐으로써 그 폐단이 없어지게 되었다는 치적이 유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