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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非子集解(3)

한비자집해(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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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비자집해(3)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31-166 吾欲以楚扶甘茂而相之秦하노니 可乎 干象對曰 不可也니이다 王曰 何也 曰 甘茂少而事史擧先生하니 史擧 니이다
大不事君하고 小不事家하야 以苛刻聞天下어늘 茂事之하야 順焉하니이다
之明 之辨也 茂事之하야 取十官而免於罪하니 是茂賢也니이다 王曰 相人敵國而(相)賢이어늘 其不可 何也
○先愼曰 賢上相字衍이라


“나는 나라의 국력으로 甘茂를 지원하여 나라의 相國이 되게 하려고 하는데 되겠는가?”라고 말하였다. 干象은 “안 됩니다.”라고 대답하였다. 楚王이 “무엇 때문에 그렇소?”라고 물었다. 간상은 “감무는 젊을 때 史擧 선생을 스승으로 섬겼는데 사거는 上蔡의 문지기[監門]였습니다.
크게는 君主를 섬기지 않았고 작게는 집안일을 하지 않아서 각박한 행실로 천하에 이름이 났는데 감무가 그런 사람을 스승으로 섬겨 〈그의 각박한 행실을〉 따랐습니다.
惠王의 밝은 지혜와 張儀의 명확한 판단 아래에서 감무는 그들을 섬겨 열이나 되는 많은 관직을 얻었으면서도 너끈히 죄에서 벗어났으니 이는 감무가 현명하기 때문입니다.”라고 대답하였다. 초왕이 “사람을 상대국의 상국으로 만들려고 할 적에는 현명한 사람을 보내는 법인데 그것이 안 된다고 하는 것은 무엇 때문이오?”라고 물었다.
王先愼:‘’ 위의 ‘’자는 衍文이다.


역주
역주1 上蔡 : 옛날 蔡나라 땅으로, 지금의 河南省 上蔡縣 서남쪽 10리쯤에 있었다.
역주2 監門 : 문을 지키는 일을 맡은 낮은 관리이다.
역주3 惠王 : 전국시대 秦나라의 惠文君을 말한다. 이름은 駟이고, 시호는 惠文인데 孝公의 아들이다. 蜀을 멸망시키고 魏나라의 上郡 15縣을 돌려받았으며, 楚나라의 漢中 6백여 리를 侵奪하여 國勢를 키웠고, 秦나라에서 처음으로 王이라 칭하였기 때문에 惠王이라 부른다.
역주4 張儀 : 전국시대 魏나라 사람이다. 蘇秦과 함께 鬼谷子에게 수학하였다. 秦 惠王을 위해 소진의 合從說을 반대하여 列國이 秦나라를 섬겨야 한다는 連衡說을 주장하였으나 惠王이 죽은 뒤 신하들의 참소로 인해 실현되지 못하였다. 뒤에 秦나라를 떠나 魏나라에 가서 宰相이 되었다.

한비자집해(3) 책은 2020.12.29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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