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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非子集解(4)

한비자집해(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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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비자집해(4)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43-13 連什伍而同其罪 賞厚而信하고 刑重而必하니 是以其民用力勞而不休하고 逐敵危而不卻이라 故其國富而兵强하니라
然而無術以知姦이면 則以其富强也 資人臣而已矣
商君死하고 卽位하야 秦法未敗也어늘以秦韓魏하고
○顧廣圻曰 句絶이라


열 집과 다섯 집을 조직하여 죄를 범하면 같은 죄를 주었다. 은 후하게 틀림없이 주고 형벌은 무겁게 반드시 시행하니, 이 때문에 백성들은 힘을 다해 일을 하여 지쳐도 쉬지 않고, 적군敵軍을 추격하여 위험하여도 물러서지 않았다. 그러므로 〈나라가〉 나라는 부유해지고 군대는 강성하였다.
그러나 을 사용하여 간신을 식별하지 못하였으니 그렇다면 그 부유하고 강성한 국력은 신하들에게 도움을 주는 데만 그쳤을 뿐이다.
효공孝公상군商君(공손앙公孫鞅)이 죽고 혜문왕惠文王이 즉위했을 때까지 나라의 변법變法이 폐기되지 않았는데, 장의張儀나라의 국력을 희생시켜 나라와 나라에서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였고,〉
고광기顧廣圻를 끊어야 한다.


역주
역주1 孝公 : 戰國時代 秦나라 25대 군주이다. 姓은 嬴, 氏는 趙, 이름은 渠梁이며, 獻公의 아들이다. 商鞅을 중용하여 富國强兵을 이루어 훗날 中國을 통일하는 초석이 되게 하였다.
역주2 惠王 : 戰國時代 秦나라의 惠文君을 말한다. 이름은 駟이고, 시호는 惠文인데 孝公의 아들이다. 蜀을 멸망시키고 魏나라의 上郡 15縣을 돌려받았으며, 楚나라의 漢中 6백여 리를 侵奪하여 國勢를 키웠고, 秦나라에서 처음으로 王이라 칭하였기 때문에 惠王이라 부른다.
역주3 張儀 : 戰國時代 魏나라 사람이다. 蘇秦과 함께 鬼谷子에게 수학하였다. 秦 惠王을 위해 소진의 合從說을 반대하여 列國이 秦나라를 섬겨야 한다는 連衡說을 주장하였으나 혜왕이 죽은 뒤 신하들의 참소로 인해 실현되지 못하였다. 뒤에 秦나라를 떠나 魏나라에 가서 宰相이 되었다.
역주4 : ‘殉’의 字解에 ‘어떤 목적을 이루기 위하여 자신의 생명을 버린다.’는 뜻이 있어서 ‘희생’으로 번역하였다.

한비자집해(4) 책은 2022.12.25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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