注
구주舊注:중사사中射士는 상上․중中․하下의 벼슬이 있다.
○고광기顧廣圻:본서本書 〈설림 상편說林 上篇〉․〈설림 하편說林 下篇〉에 모두 ‘중사지사中射之士(중사中射의 사士)’가 있다. ‘사射’를 다른 책에는 ‘사謝’로도 되어 있으니,
≪여씨춘추呂氏春秋≫ 〈거유편去宥篇〉에 “중사세인야中謝細人也(중사中謝는 지위가 낮은 사람이다.)”라 하였고, ≪사기색은史記索隱≫ 〈장의열전張儀列傳〉에 “개시어지관蓋侍御之官(임금을 모시는 벼슬이다.)”이라 하였다. 이곳의 내용은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 소공昭公 4년의 초거椒擧를 말한 것과 같지 않다.
손이양孫詒讓:≪
여씨춘추呂氏春秋≫ 〈
거유편去宥篇〉의
고유高誘의
주注에 “‘
중사中謝’는 벼슬 이름이다.”라고 하였다. ‘
사謝’와 ‘
사射’는 통용이나 글자는 응당 ‘
사射’자를
정자正字를 삼아야 하니, 곧 ≪
주례周禮≫ 〈
하관夏官〉의 ‘
사인射人’이다.
注+≪전국책戰國策≫ 〈초책楚策〉에도 ‘중사지사中射之士(중사中射의 사士)’가 있는데, 포표鮑彪의 주注에 “사인射人으로서 궁중에 있는 사람이다.”라고 하였다. 포표는 ≪주례周禮≫를 인용하지 않았으니, 활을 잘 쏘는 사람으로서 궁중에 있는 사람을 지칭한 듯하여 나(손이양孫詒讓)의 설說과는 같지 않다.
‘중사中射’는 사인射人으로서 궁내宮內에서 시중을 드는 사람이니, 마치 연인涓人으로서 궁내宮內에 있는 자를 ‘중연中涓’이라 부르고, 서자庶子로서 궁내宮內에 있는 자를 ‘중서자中庶子’라 부르는 것과 같다.
≪주례周禮≫에 사인射人과 태복太僕이 모두 조위朝位를 주관하고, 또 태상太喪과 복인僕人이 시신屍身을 옮긴다 하였다. ≪예기禮記≫ 〈단궁檀弓〉에 “임금을 부축할 때 복인卜人의 우두머리는 오른쪽에서 부축하고 사인射人의 우두머리는 왼쪽에서 부축한다.” 하였는데,
정현鄭玄의 주注에 “‘복卜’은 응당 ‘복僕’이 되어야 하니, 음音이 같아 잘못 쓴 것이다.” 하였다. 복인僕人과 사인射人은 모두 평상시에 임금의 의복과 자리를 바르게 하도록 돕는 자이니, 이는 사인射人과 복인僕人의 관련官聯이다.
그러므로 후세後世에 두 벼슬을 합쳐서 시어侍御하는 근신近臣의 이름을 복야僕射라 하였다. ≪사기史記≫ 〈한신열전韓信列傳〉의 ‘연오連敖’를 ≪사기집해史記集解≫에 “여순如淳이 ‘초楚나라에 연윤連尹과 막오莫敖가 있었는데 그 뒤에 합쳐서 하나의 벼슬이 되었다.’라고 했다.” 하였으니, 이 역시 두 벼슬의 이름이 합쳐져서 한 이름이 된 증거이다.
≪한서漢書≫ 〈백관공경표百官公卿表〉에 “복야僕射는 진秦나라 벼슬이니, 예전에 무관武官을 중시하여 활쏘기를 주관하는 관리官吏를 두어 감독하고 고과考課하였다.”라고 하였으니, 이 뜻이 아직까지 예전과 부합한다.
이부李涪의 ≪간오刊誤≫에 공연孔衍의 말을 인용하여 “복야僕射는 낮은 관리로 임금을 좌우에서 부액扶腋(부축)하는 사람이다.”라고 하였다. 이는 후세에 복야僕射의 ‘사射’자 음音을 야夜로 읽는 것을 통하여 말한 것이니, 근거할 수 없다.
왕선신王先愼:손이양의 설說이 옳으니, 구주舊注의 “〈중사사中射士는〉 상․중․하의 벼슬이 있다”는 것은 틀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