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고전종합DB

韓非子集解(3)

한비자집해(3)

출력 공유하기

페이스북

트위터

카카오톡

URL 오류신고
한비자집해(3)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25-21 人主不自刻以堯하고 而責人臣以子胥 是幸殷人之盡如이니
盡如比干이면 則上不失하고 下不亡이니라 不權其力而有이어늘 而幸其身盡如比干이라
○先愼曰 盧文弨拾補 改身爲臣이라 顧廣圻云 此二句 以其力與其身相對
言人主當權其臣之力하야 使不得爲田成이요 不當責其臣之身하야 使爲比干也 或謂此有誤字라하니라하니라 先愼案 顧說是


임금이 자신은 임금처럼 되는 각고의 노력을 하지 않고 신하에게 伍子胥처럼 되라고 요구한다면 이는 나라 사람이 모두 比干 같은 충신이 되기를 바라는 것이다.
사람들이 모두 비간처럼 된다면 임금은 나라를 잃지 않고 백성은 몸을 망치지 않았을 것이다. 임금이 신하의 세력을 헤아리지 못하여 田成子와 같은 신하가 있는데도 신변의 신하들이 모두 비간처럼 되기를 바란다.
王先愼盧文弨의 ≪群書拾補≫에 ‘’을 고쳐서 ‘’으로 만들었다. 顧廣圻는 “이 두 는 ‘其力’과 ‘其身’으로 相對하였으니,
임금은 응당 신하의 권력을 헤아려서 田成子처럼 되지 않게 해야 하고 그 신하의 몸에 비간처럼 되도록 요구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말한 것이다. 혹자는 ‘이 부분에 오자가 있다.’라고 말하였으니, 이는 틀렸다.”라고 하였다. 나는 살펴보건대 顧廣圻의 설이 옳다.


역주
역주1 比干 : 殷나라 末王 紂의 諸父 중 한 사람이다. 일설에는 庶兄이라고도 한다. 紂의 음란함을 諫하다가 심장을 가르는 慘刑을 받아 죽었다. 箕子‧微子와 함께 殷나라 三仁으로 일컫는다.
역주2 田成 : 춘추시대 齊나라 大夫 田恒으로, 成은 그의 諡號이다. 그의 先祖 陳나라 公子 完이 제나라에 망명하여 姓을 田氏로 바꾸었는데, ≪春秋左氏傳≫에는 陳恒으로, ≪史記≫에는 田常으로 기록 되었다. 齊 簡公을 시해하고 平公을 세워 齊나라의 정권을 독점하였고, 그의 증손 田和가 齊 康公을 축출하고 自立하여 田氏의 제나라를 만들었다.

한비자집해(3) 책은 2020.12.29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우)03140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17길 52 낙원빌딩 411호

TEL: 02-762-8401 / FAX: 02-747-0083

Copyright (c) 2022 전통문화연구회 All rights reserved. 본 사이트는 교육부 고전문헌국역지원사업 지원으로 구축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