注
○王先謙曰 水經濟水注에 平陰城南에 有長城하니 東至海하고 西至濟하니 河道所由라 名防門이니 去平陰三里라
齊侯塹防門이라하니 卽此也라 其水引濟하니 故瀆尙存이라하니라
續漢郡國志에 濟北國盧縣下劉昭注에 引史記蘇代說燕王曰 齊有長城巨防이라하니 巨防이 卽防門이라하니라
先愼曰 策에 作鉅坊하니 案鉅巨字通이요 坊誤니 當作防이라 史記에 亦作防하니라
장성長城과 거방巨防이 요새가 되기에 충분합니다.
注
○왕선겸王先謙:≪수경주水經注≫ 〈제수濟水〉에 “평음성平陰城 남쪽에 장성長城이 있는데, 동쪽으로는 바다에 닿고 서쪽으로는 제수濟水에 닿으니, 황하黃河의 물길이 경유하는 곳이다. 이름을 방문防門이라 하니 평음에서 3리쯤의 거리이다.
제후齊侯가 방문을 팠다고 하였는데, 바로 이곳이다. 제수에서 물을 끌어왔는데, 예전의 도랑이 아직 남아 있다.” 하였다.
≪속한서續漢書≫ 〈군국지郡國志〉의 제북국 노현濟北國 盧縣 밑의 유소 주劉昭 注에서 “≪사기史記≫ 〈소진열전蘇秦列傳〉에 소대蘇代가 연왕燕王에게 유세遊說하기를 ‘재齊나라에는 장성과 거방이 있다.’ 하였다.”라고 인용하고서, “거방이 곧 방문이다.” 하였다.
왕선신王先愼:≪전국책戰國策≫ 〈진책秦策〉에 ‘거방鉅坊’으로 되어 있다. 살펴보건대 ‘거鉅’와 ‘거巨’자는 통용이고, ‘방坊’은 오자이니 응당 ‘방防’이 되어야 한다. ≪사기史記≫ 〈소진열전蘇秦列傳〉에도 ‘방防’으로 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