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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非子集解(3)

한비자집해(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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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經五]
32-41 詩曰 不躬不親이면 庶民不信이라하니 로되 之以이면
○顧廣圻曰 藏本 緩作綬 今本緩之作子産이어늘 皆誤 宋襄二字 連上讀이라
先愼曰 此言鄭簡謂子産 宋襄與楚人戰二條 緩字未詳所當作이라


詩經≫ 〈小雅 節南山〉에 “〈군주가〉 몸소 정사를 보지 않으면 백성들이 믿지 않는다.”라고 하였으니, 太傅가 이를 풀이하여 자색 옷을 입지 않도록 권하였으되, 簡公 襄公의 사례를 인용해보면
顧廣圻藏本에 ‘’은 ‘’로 되어 있고, 今本에 ‘綬之’는 ‘子産’으로 되어 있는데, 모두 잘못되었다. ‘宋襄’ 두 자는 위로 이어서 읽는다.
王先愼:이는 簡公子産에게 이른 것과 襄公나라 사람과 싸운 두 가지 조목이니, ‘’자가 어떤 글자가 되어야 하는지 자세히 알 수 없다.


역주
역주1 傅說之以無衣紫 : 齊 桓公이 자색 옷을 즐겨 입자 백성들까지 따라 입어서 나라 안의 자색 옷이 귀해지는 문제가 생겼는데, 管仲(또는 師傅)이 군주가 스스로 자색 옷을 입지 않고 솔선하면 해결될 것이라고 권하여 그 문제를 해결한 일이다. 아래 32-221~227 참조.
역주2 (緩)[援] : 저본에는 ‘緩’으로 되어 있으나, ≪韓非子新校注≫ 高亨의 설에 따라 ‘援’으로 바로잡았다. ‘援’은 ‘인용하다’는 의미이다.
역주3 鄭簡 : 鄭 簡公과 재상 子産이 각기 직분에 따라 정사를 봄으로써 나라가 잘 다스려진 일이다. 아래 32-228~233 참조.
역주4 宋襄 : 宋 襄公이 楚나라 군대와 전쟁을 하면서 독단적으로 상황에 맞지 않은 仁義를 추구하다가 대패한 일이다. 아래 32-234~238 참조.

한비자집해(3) 책은 2020.12.29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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