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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非子集解(1)

한비자집해(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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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一 初見秦篇
라하야늘 秦惠王也
云 張儀誤 當作韓非 非以韓王安五年使秦하니 始皇十三年이라하니 今案 吳依此 是也
曰 史記秦本紀 竝以韓非使秦 在始皇十四年하고 韓世家 屬之王安五年이라
案秦攻韓 紀表未書 始皇十三年 用兵於趙하야 十四年 定平陽武城宜安하고 而後從事於韓하니
則非之使秦 當在韓王安六年이니 紀表爲是 吳師道以非爲韓王安五年使秦 據世家言之 不知作五年者 史駮文也
又案 篇目 이요 下同하니 不復出이라



나라 왕에게 합종合從을 깨뜨리고 패업霸業을 이루는 책략策略을 진술한 말을 기록하였는데, 모두 다섯 단락으로 되어 있다. 첫째 자기의 충심忠心을 다해 알고 있는 바를 모두 진술하겠다는 내용이다. 둘째 산동 육국山東 六國합종合從은 스스로 멸망을 초래하기에 충분하고, 진나라 백성이 죽음을 돌보지 않고 힘을 다해 싸우는 점은 패업을 이룰 수 있다고 강조하였다. 셋째 진나라가 패왕霸王이 될 수 있는 기회를 낱낱이 들어 진나라 모신謀臣불충不忠논증論證하였다. 넷째 장평長平의 전쟁에서 당연히 망해야 할 나라가 망하지 않고, 당연히 패업을 이루어야 할 진나라가 패업을 이루지 못하여 천하 제후들의 합종을 이루는 계기가 되었다고 말하였다. 다섯째 현재 진나라의 정세情勢는 합당한 모략謀略을 쓰면 천하를 겸병兼倂할 수 있으니, 합종을 깨뜨리고 패업을 이루는 책략을 써야 한다고 진술한 내용으로 되어 있다.
고광기顧廣圻:≪전국책戰國策≫에 장의張儀유세遊說로 되어 있는데, 고유高誘에 “진 혜왕秦 惠王에게 유세한 것이다.”라고 하였다.
오사도吳師道의 ≪전국책보주戰國策補注≫에 말하기를, “장의라고 한 것은 잘못이다. 한비韓非가 되어야 마땅하다. 한비가 한 안왕韓 安王 5년에 나라에 사신을 갔으니, 이때는 시황始皇 13년(B.C.234)이다.”라고 하였다. 지금 내가 살펴보건대, 오사도가 여기에 의거하여 말했으니, 옳다.
왕선신王先愼:≪사기史記≫ 〈진본기秦本紀〉와 〈육국표六國表〉에는 모두 한비가 진나라에 사신을 간 일이 시황 14년(B.C.233)에 있고, 〈한세가韓世家〉에는 안왕 5년(B.C.234)에 달아놓았다.
살펴보건대, 나라가 나라를 공격한 일을 〈진본기〉와 〈육국표〉에는 기록하지 않았다. 시황 13년에 나라와 전쟁하여, 14년에 평양平陽무성武城의안宜安을 평정하고 난 뒤에 나라와 전쟁하였다.
그렇다면 한비가 진나라에 사신을 간 것은 당연히 한 안왕 6년일 것이니, 〈진본기〉와 〈육국표〉의 기록이 옳다. 오사도가 한비가 한 안왕 5년에 진나라에 사신을 갔다고 한 것은 〈한세가〉에 의거하여 말한 것이니, 5년이라고 한 것은 역사서歷史書의 서로 배치되는 문장인 줄 모른 것이다.
또 살펴보건대, 조본趙本편목篇目정격頂格으로 되어 있고 아래도 같으니 다시 말하지 않는다.


역주
역주1 본서는 王先愼의..... : 본서는 王先愼의 ≪韓非子集解≫에 수록된 諸家의 설을 번역하였으나, 原文의 번역은 왕선신의 견해를 遵用하지 않고 역자의 판단에 따라 번역하였음을 밝혀둔다.
역주2 顧廣圻 : 1770~1835. 淸나라의 유명한 校勘學者이자 藏書家이다. ≪說文解字≫․≪禮记≫․≪儀禮≫․≪國語≫․≪戰國策≫․≪文選≫ 등 많은 서적을 교감하여 乾隆 嘉慶 연간에 盧文弨와 함께 최고로 일컬어졌다.
역주3 戰國策 : ≪戰國策≫의 〈秦策〉을 말한다. 아래의 ≪전국책≫은 모두 같다. ≪전국책≫은 戰國時代의 국가별로 엮은 역사책의 하나로, ≪國策≫이라고도 한다. 이 책에 수록된 나라는 西周․東周와 秦․齊․楚․趙․魏․韓․燕․宋․衛․中山 등 12개국으로, 약 240년간에 일어난 各國의 일을 기록하였다. 記事를 戰國 초기에서 시작하여 秦나라가 六國을 멸망시킨 데에서 마쳤다. 모두 12策, 33卷으로 나누어 497篇을 실었는데, 記述한 내용은 주로 戰國時期의 遊說家들이 주장한 정치와 策略에 관한 것이다. 西漢의 劉向이 33篇으로 편성하였고, 書名도 유향이 정했다고 한다. 宋나라 때에 이미 殘缺되었는데, 曾鞏이 補訂하였다. 주석서로는 後漢의 高誘의 注가 있었으나 지금은 잔결되었고, 송나라의 鮑彪가 지은 新注가 있고 元나라의 吳師道가 지은 ≪戰國策校注≫가 있다.
역주4 張儀 : 전국시대 縱橫家의 한 사람이다. 魏나라 사람으로 蘇秦과 함께 鬼谷子에게 수학하였다. 秦 惠王에게 소진의 合從說에 반대하여 連衡說을 주장하며 列國 諸侯가 秦나라를 섬겨야 한다고 건의하여 재상이 되었으나, 진 혜왕이 죽은 뒤 여러 신하의 참소로 실현되지 못하였다. 뒤에 위나라에 돌아와 재상이 되었다.
역주5 高誘 : 後漢 涿郡 涿縣(지금의 河北省 涿州市) 사람이다. 젊었을 때 같은 縣의 盧植에게 배웠다. 著書에 ≪孟子章句≫(현재 佚失됨)․≪孝經注≫(현재 佚失됨)․≪戰國策注≫(현재 殘存)․≪淮南子注≫(현재 許愼注와 섞여 있음)․≪呂氏春秋注≫ 등이 있다.
역주6 吳師道補注 : 吳師道(1283~1344)는 元나라 婺州 蘭溪 사람으로 자는 正傳이다. 詞章에 뛰어났다. 英宗 至治 원년(1321)에 進士가 되고, 高郵縣丞에 올랐다. 寧國路錄事ㆍ建德縣尹ㆍ國子博士ㆍ禮部郞中을 역임하였다. 젊어서 眞德秀의 저서를 읽고 義理之學에 마음을 정하였고, 許謙에게 수학했다. 저서에 ≪禮部集≫ㆍ≪敬鄕錄≫ㆍ≪戰國策校注≫ㆍ≪吳禮部詩話≫ㆍ≪吳正傳文集≫ 등이 있다. 補注는 그가 지은 ≪戰國策補注≫를 말한다.
역주7 先愼 : ≪韓非子集解≫를 편찬한 王先愼이다. 湖北省 長沙 사람으로 王先謙의 從弟이다.
역주8 六國表 : ≪史記≫의 〈六國年表〉를 말한다. 六國은 전국시대의 魏․韓․趙․楚․燕․齊이다. 周 元王(B.C.476)에 시작하여 秦 二世까지 모두 270년(B.C.207)간의 周․秦과 함께 山東 여섯 諸侯國의 일을 정리하여 표한 年表이다.
역주9 趙本 : 明나라 趙用賢 刻本의 약칭이다.
역주10 頂格 : 문서나 원고의 단락을 편집할 때 題目이나 篇目의 글자를 띄우지 않고 상단에 붙여서 배치하는 것을 말한다.

한비자집해(1) 책은 2019.10.25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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