注
○顧廣圻曰 周는 當作意니 下文云 天下皆比意甚固라하고 策에 兩意字를 皆作志하니라
王先謙曰 高注
에 華下
는 華山之下也
라하니라 案據史記紀表世家參之
컨대 秦昭王九年
에 하고
天官書
에 中國山川
이 東北流
하야 首在
하고 尾沒勃碣
이라하야늘 張守節所謂自南山華山渡河
하야 東北盡碣石者
니
是函崤諸山이 皆華嶽支麓이라 故函谷亦得稱爲華下라
戰國之兵이 始終未踰秦關一步하니 華山之下는 固非天下所能軍也라 比意는 猶言合謀라
천하 제후국의 군대가 또 집결하여 화하華下에 주둔하였는데,
注
○고광기顧廣圻:‘주周’는 응당 ‘의意’가 되어야 하니, 아래 글에 ‘천하개비의심고天下皆比意甚固(천하의 제후국들이 한마음으로 매우 굳게 연합하다.)’라 하였고, ≪전국책戰國策≫ 〈진책秦策〉에는 두 ‘의意’자가 모두 ‘지志’로 되어 있다.
왕선겸王先謙:고유高誘의 주注에 “‘화하華下’는 화산華山의 아래다.” 하였다. ≪사기史記≫ 〈진본기秦本紀〉․〈육국표六國表〉․〈세가世家〉에 의거하여 참고하고 살펴보건대 진 소왕秦 昭王 9년(B.C.298)에 위魏․재齊․한韓이 함께 함곡函谷에서 진나라 군대를 패배시켰고,
11년에 재齊․한韓․위魏․조趙․송宋․중산中山이 함께 진나라를 공격하였으니, 이 글은 이 일을 가리킨 듯하다.
≪사기史記≫ 〈천관서天官書〉에 “중국의 산천이 동북쪽으로 흘러가서 머리는 농촉隴蜀에 있고, 꼬리는 발해渤海․갈석碣石에서 침몰되었다.” 하였는데, 장수절張守節이 이른바 “남산南山․화산華山으로부터 황하를 건너 동북쪽으로 내려가 갈석에서 다하였다.”는 것이다.
이는 함곡函谷과 효산崤山이 모두 화악華嶽에서 갈려 나온 산이다. 그러므로 함곡도 화하라고 일컬을 수 있다.
전국시대(육국六國)의 군대가 처음부터 끝까지 진나라의 관문을 한 발짝도 넘지 못했으니 화산의 아래는 본디 천하 제후국의 군대가 주둔할 수 있는 곳이 아니다. ‘비의比意’는 ‘합모合謀(함께 모의함)’라는 말과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