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2 若居濕地하고 著而不去라가 以極走면 則發矣니이다
注
謂疾得冷이라가 卒然而走면 必發矣니 喩秦이 雖加恩於韓이라도 有急이면 韓之不臣之心이 必見矣라
○顧廣圻曰 虛處逗니 平居也라 與極으로 對文이니 則㤥然若居濕地著而不去十一字爲一句라
㤥는 說文에 苦也라하고 廣韻云 患苦니 胡槪切이라하니 舊注는 皆誤라 以極이 逗니 走字는 衍이라
兪樾曰 顧氏視舊讀爲長이나 然平居不得謂之虛處요 且走與處對文이니 則走字는 非衍也라 按此當以虛處則㤥然若居濕地爲句라
虛는 乃衍字也니 蓋卽處字之誤而複者라 著而不居爲句요 以極走則發矣爲句라
極은 猶亟也니 古字通用이라 荀子賦篇에 出入甚極이라하고 又曰 反覆甚極이라하니 楊注竝云 極은 讀爲亟이라하니 是其證이라
此言腹心之病이 附著不去하니 平居猶可나 亟走則發矣라 亟走는 喩急也라 舊注에 卒然而走라하니 是正讀極爲亟也라
下文에 今若有卒報之事韓不可信也라하니 若有卒報之事與亟走之喩相應이라 顧訓極爲困이라하야 而刪走字하니 未得其旨라
先愼曰 兪說이 是라 乾道本注에 冷作令이어늘 今依趙本하니라
마치 축축한 곳에 사는 것과 같으며, 병이 달라붙어서는 떨어지지 않고 있다가 급히 달리기라도 하면 발작합니다.
注
구주舊注:병이 잦아들었다가 갑자기 달리면 반드시 발병發病함을 말한다. 진나라가 비록 한나라에 은혜를 베풀더라도 위급한 경우를 만나면 한나라의 신복臣服하지 않는 마음이 반드시 드러날 것임을 비유하였다.
○고광기顧廣圻:‘허처虛處’에서 구두해야 하니, ‘평거平居(평상시)’라는 뜻이다. ‘극極’과 대문對文이니, ‘즉해연약거습지저이불거則㤥然若居濕地著而不去’ 11자가 한 구가 된다.
‘회㤥’는 ≪설문해자說文解字≫에 “‘고苦(괴로움)’이다.” 하고, ≪광운廣韻≫에 “‘환고患苦(근심스럽고 괴로움)’이니, 호胡와 개槪의 반절半切이다.” 하였다. 구주舊注는 모두 틀렸다. ‘이극以極’에서 구두해야 하고, ‘주走’자는 연문衍文이다.
유월兪樾:고광기顧廣圻의 설이 구주舊注보다는 낫지만 ‘평거平居’를 ‘허처虛處’라고 말할 수는 없고, 또 ‘주走’와 ‘처處’가 대문對文이니, 그렇다면 ‘주走’자는 연문衍文이 아니다. 살펴보건대, 이 문장은 응당 ‘허저즉해연약거습지虛處則㤥然若居濕地’를 한 구로 해야 한다.
‘허虛’는 곧 연문衍文이니, 대개 ‘처處’자가 잘못 쓰이면서 중복된 것이다. ‘저이불거著而不居’가 한 구가 되고, ‘이극주즉발의以極走則發矣’가 한 구가 된다.
‘극極’은 ‘극亟’과 같으니, 고자古字에서 통용이다. ≪순자荀子≫ 〈부편賦篇〉에 “출입심극出入甚極(출입함이 매우 급하다.)”이라 하고, 또 “반복심극反復甚極(반복함이 매우 급하다.)”이라 하였는데, 양경楊倞의 주注에 모두 “‘극極’은 ‘극亟’으로 읽어야 한다.” 한 것이 그 증거이다.
이것은 복심腹心의 병이 붙어서 떨어지지 않고 있으니, 평안하게 있을 때는 그래도 괜찮지만 급히 달리면 발병한다는 것이다. ‘극주亟走(급히 달림)’는 위급한 상황을 비유한 것이다. 구주舊注에 ‘갑자기 달리다[졸연이주卒然而走]’라고 하였으니, ‘극極’을 ‘극亟’으로 바로잡아 읽은 것이다.
아래 글에 ‘금약유졸보지사 한불가신야今若有卒報之事 韓不可信也’라고 하였는데, ‘약유졸보지사若有卒報之事’와 ‘극주亟走’의 비유가 서로 호응한다. 고광기顧廣圻는 ‘극極’을 ‘곤困’으로 해석하고 ‘주走’자를 삭제하였으니, 본뜻을 터득하지 못한 것이다.
왕선신王先愼:유월의 설이 옳다. 건도본乾道本의 구주舊注에 ‘냉冷’은 ‘영令’으로 되어 있는데, 지금 조본趙本을 따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