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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非子集解(4)

한비자집해(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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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106 問於樛留호되 吾欲兩用公仲公叔이어늘 其可乎
樛留對曰 昔魏兩用樓翟而亡西河하고
樓緩 翟璜也
○顧廣圻曰 樓翟 樓鼻翟强也 事見魏策하니 舊注誤甚이라


선왕宣王규류樛留에게 물었다. “내가 공중公仲공숙公叔을 둘 다 등용하고자 하는데 괜찮겠는가?”
규류가 대답하였다. “옛날 나라는 누비樓鼻적강翟强을 둘 다 등용하여 서하西河를 잃었고
구주舊注:〈‘누적樓翟’은〉 누완樓緩책황翟璜을 가리킨다.
고광기顧廣圻누적樓翟누비樓鼻적강翟强이다. 이 일이 ≪전국책戰國策≫ 〈위책魏策〉에 보이니, 구주舊注는 매우 잘못되었다.
왕선신王先愼:≪한비자韓非子≫ 〈설림說林 〉에는 ‘누적樓翟’이 ‘서수장의犀首張儀’로 되어 있다.


역주
역주1 韓宣王 : 전국시대 韓나라의 君主로 이름은 康이다. 昭侯의 아들인데 韓 威侯라고도 한다. 魏 惠王과 巫沙에서 會盟하면서 함께 君號를 王으로 올리기로 하고 한나라에서 처음으로 王號를 썼다. 史書에서는 宣惠王으로 기록되어 있다.
역주2 說林上 樓翟作犀首張儀 : ≪韓非子≫ 〈說林 上〉에 “晉나라는 六卿을 임용하여 나라가 나뉘었고, 齊 簡公은 田成과 闞止를 둘 다 임용하여 간공이 시해당하였으며, 魏나라는 犀首와 張儀를 둘 다 임용하여 西河 밖의 땅을 잃었습니다.[晉用六卿而國分 簡公兩用田成闞止而簡公殺 魏兩用犀首張儀而西河之外亡]”라고 하였다.

한비자집해(4) 책은 2022.12.25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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