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150 此智之如目也
니이다하니 王乃止
하다 故知之難
은 不在見人
이요 在自見
이라 故曰
이라하니라
注
○顧廣圻曰 傅本及今道經에 之謂二字作者라 傅本末有也字니 下句同이라
先愼曰 自見은 老子作自知라 此文上言臣患智之如目也라하고 又言此智之如目也라하니
卽以莊王事喩老子自知之謂明句
요 道經自知
는 卽承
而言
이니 無作見之本
이라
此見字는 卽緣上兩見字而誤니 非韓子所見本有不同也라 當依老子作知라
이것이 지혜가 눈과 같다는 것입니다.”라고 하니 왕이 정벌 계획을 멈추었다. 그러므로 아는 것의 어려움은 남을 보는 데 있지 않고 스스로를 보는 데에 있다. 이 때문에 ≪老子≫에 “스스로를 아는 것을 ‘明’이라고 한다.”라고 하였다.
注
○顧廣圻:傅奕本과 지금의 ≪道經≫에는 ‘之謂’ 두 자가 ‘者’로 되어 있다. 傅奕本에는 끝에 ‘也’자가 있으니 아래 구문도 마찬가지다.
王先愼:‘自見’은 ≪老子≫에 ‘自知’로 되어 있다. 이 글은 위에서 “신은 지혜가 눈과 같음을 두려합니다.[臣患智之如目也]”라 말하고, 또 “이것이 지혜가 눈과 같다는 것입니다.[此智之如目也]”라 말하였으니,
이는 곧 莊王의 일을 가지고 ≪老子≫의 ‘自知之謂明’ 구를 비유한 것이고, ≪道經≫의 ‘自知’는 곧 ‘知人者智也(다른 사람을 아는 것이 智이다.)’를 이어받아 말한 것이니, 〈≪老子≫ 중에〉 ‘見’자로 되어 있는 책은 없다.
여기에 ‘見’자는 바로 위에서 나온 두 ‘見’자에 기인하여 잘못된 것이니, 韓子가 본 책에 다른 점이 있어서가 아니다. 응당 ≪老子≫에 의거하여 ‘知’가 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