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고전종합DB

韓非子集解(1)

한비자집해(1)

출력 공유하기

페이스북

트위터

카카오톡

URL 오류신고
한비자집해(1)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3-14 此臣非之所以難言而重患也니이다 故度量雖正이라도 未必聽也 義理雖全이라도 未必用也니이다
이것이 신 한비가 진언하기를 어렵게 여겨 신중히 하고 두려워하는 이유입니다. 그러므로 헤아림이 비록 올바르더라도 반드시 받아들여지는 것은 아니며, 의리가 비록 완전하더라도 반드시 쓰이는 것은 아닙니다.
大王若以此不信하시면 則小者以爲毁訾誹謗하고 大者患禍災害死亡及其身하리이다
대왕大王께서 만약 이러한 이유로 진언하는 말을 믿지 않으신다면 작게는 〈진언한 자를〉 비방하고 헐뜯는 경우가 생기며 크게는 환난과 재앙, 죽음이 진언한 자의 몸에 미치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오자서伍子胥는 모략에 뛰어났지만 오왕吳王이 그를 죽였고, 중니仲尼는 언변에 뛰어났지만 지역 사람들이 그를 포위했으며, 관이오管夷吾는 실로 현인이었지만 나라가 그를 가두었습니다.
故此三大夫豈不賢哉리잇가 而三君不明也니이다 上古有湯 至聖也 伊尹 至智也니이다
그러니 이 세 사람이 어찌 현명하지 못해서이겠습니까. 이는 세 군주가 총명하지 못해서입니다. 상고시대에 탕왕湯王은 지극한 성인이었고 이윤伊尹은 지극히 지혜로운 자였습니다.
夫至智說至聖이나 然且七十說而不受하야 하야 昵近習親하니 而湯乃僅知其賢而用之니이다
지극히 지혜로운 자가 지극한 성인을 설득하였으나 일흔 번이나 설명을 하였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자 몸소 솥과 도마를 잡고 요리사가 되어 가까이에서 친숙하게 지내니, 그런 다음에야 탕왕이 겨우 그의 현명함을 알아보고 등용하였습니다.
故曰 以至智說至聖이라도 未必至而見受라하니 伊尹說湯是也니이다
그러므로 “지극히 지혜로운 자가 지극한 성인을 설득해도 반드시 받아들여지는 것은 아니다.”라고 하니 이윤이 탕왕을 설득한 경우가 이것입니다.
以智說愚라도 必不聽이니 文王說紂是也니이다하고
지혜로운 자가 어리석은 자를 설득해도 반드시 받아들여지지 않으니 문왕文王를 설득한 경우가 이것입니다. 그러므로 문왕이 를 설득하였지만 는 그를 가두었고
   伊尹(≪萬古際會圖像≫)            周 文王(≪萬古際會圖像≫) 伊尹(≪萬古際會圖像≫) 周 文王(≪萬古際會圖像≫)
○先愼曰 乾道本 無而紂二字 顧廣圻云 藏本今本 紂下有而紂二字라하니 今據補
왕선신王先愼건도본乾道本에는 ‘이주而紂’ 두 자가 없다. 고광기顧廣圻는 “장본藏本금본今本에는 ‘’ 아래에 ‘이주而紂’가 있다.”라고 하니 지금 이에 의거하여 보충하였다.
3-15 하고
익후翼侯는 불에 구워졌고
○顧廣圻曰 戰國策史記皆作鄂侯
고광기顧廣圻:≪전국책戰國策≫과 ≪사기史記≫에는 모두 ‘악후鄂侯’로 되어 있다.
先愼曰 左隱五年 邢人伐翼하니 翼侯奔隨라하고 六年 納諸鄂謂之鄂侯라하니 翼鄂地近이라 故相通稱이라
왕선신王先愼:≪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은공隱公 5년 조에 “형인邢人을 정벌하니 익후翼侯로 달아났다.”라고 하였고, 6년 조에 “에 머물게 하니 ‘악후鄂侯’라 하였다.”라고 하니 은 지역이 가까워 서로 통칭한 것이다.
史記楚世家 熊渠中子紅爲鄂王이라하고 吳越春秋句踐陰謀外傳 號翼侯라하니 可借證翼鄂通稱이라
사기史記≫ 〈초세가楚世家〉에 “웅거熊渠의 둘째 아들 웅홍熊紅악왕鄂王으로 삼았다.”라고 하였고 ≪오월춘추吳越春秋≫ 〈구천음모외전句踐陰謀外傳〉에 “익후翼侯라 불렀다.”라고 하니 을 통칭했음을 증명할 수 있다.
역주
역주1 子胥善謀而吳戮之 : 伍子胥는 춘추시대 楚나라 사람인데 아비와 형이 모함을 받아 楚 平王에게 처형당하자 원수를 갚기 위해 吳나라로 망명하였다. 당시 吳王 闔廬는 오자서의 힘으로 霸者가 되었으나, 합려의 아들 夫差가 즉위한 후에는 그의 계책을 쓰지 않고 간신인 伯嚭(백비)의 말을 따라 越나라와 화친하고, 오자서에게는 屬鏤劍을 주어 자결하도록 하였다. 자세한 내용은 ≪史記≫ 권66 〈伍子胥列傳〉에 보인다.
역주2 仲尼善說而匡圍之 : 魯나라 陽虎란 자가 일찍이 匡 지역에서 횡포를 부렸는데, 孔子의 외모가 양호와 비슷했으므로, 匡 지역 사람들이 공자를 양호인 줄 잘못 알고 포위했던 일이 있었다. 관련 내용은 ≪論語≫ 〈子罕〉에 보인다.
역주3 管夷吾實賢而魯囚之 : 齊나라 襄公이 무도한 정치를 펴자, 鮑叔牙는 公子 小白을 받들고 莒나라로 망명하였고 管仲과 召忽은 공자 糾를 받들고 魯나라로 망명하였다. 양공이 죽게 되자 소백이 먼저 제나라로 돌아와서 임금이 된 다음, 노나라에 명하여 공자 규를 죽이고 관중과 소홀을 제나라로 돌려보내게 하였다. 이에 소홀은 그곳에서 자살하고 관중은 檻車에 갇히기를 자청하여 제나라로 왔는데, 포숙아가 환공에게 청하여 관중을 정승으로 삼게 하였다. 관련 내용은 ≪史記≫ 권32 〈齊太公世家〉에 보인다.
역주4 身執鼎俎爲庖宰 : 伊尹은 殷나라 湯王의 재상이다. 당초에 이윤은 탕왕을 만날 길이 없자 탕왕의 처인 有莘氏 집의 요리사가 된 뒤에, 솥과 도마를 등에 지고 탕왕을 만나 음식으로써 천하의 도리를 비유해 설명했다는 고사가 전한다. 관련 내용이 ≪史記≫ 권3 〈殷本紀〉에 보인다.
역주5 文王說紂而紂囚之 : 周 文王이 일찍이 殷나라 紂의 밑에서 九侯, 鄂侯와 함께 三公으로 있을 적에 紂가 무죄한 구후와 악후를 처참하게 죽인 데 대하여 몰래 탄식을 했다가, 소인의 참소에 의해 紂의 노염을 사서 羑里(유리)에 수감되었다. 관련 내용이 ≪史記≫ 권4 〈周本紀〉에 보인다.
역주6 翼侯炙 : 翼侯는 鄂侯를 가리킨다. 鄂侯는 殷나라 紂 때의 제후였는데, 紂의 비행을 간하자 紂가 노하여 악후를 脯 떠버렸다. 관련 내용이 ≪史記≫ 권3 〈殷本紀〉에 보인다.

한비자집해(1) 책은 2019.10.25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우)03140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17길 52 낙원빌딩 411호

TEL: 02-762-8401 / FAX: 02-747-0083

Copyright (c) 2018 By 전통문화연구회 All rights reserved. 본 사이트는 교육부 고전문헌국역지원사업 지원으로 구축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