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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非子集解(1)

한비자집해(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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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비자집해(1)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1-42 此固以失霸王之道二矣니이다 前者穰侯之治秦也 用一國之兵하야 而欲以이라
이것이 진실로 패주霸主제왕帝王이 되는 두 번째의 기회를 잃은 것입니다. 지난번 양후穰侯가 진나라를 다스릴 적에 온 나라의 병력을 사용하여 두 나라의 을 이루려 하였습니다.
穰侯營私邑謀秦이라 故非諷云兩國이라
구주舊注양후穰侯가 자기의 봉읍封邑을 경영하고 나라를 위하는 계책을 행하였다. 그 때문에 한비韓非가 ‘두 나라’라고 비꼬아 말한 것이다.
○王先謙曰 高注 穰侯 魏人이라 猶相也 穰侯相秦 欲興秦而安魏 故曰 欲成兩國之功이라하니
왕선겸王先謙:≪전국책戰國策≫ 〈진책秦策고유高誘에 “양후穰侯나라 사람이다. ‘’는 ‘’과 같다. 양후가 나라의 이 되었을 때 진나라를 창성昌盛시키고 위나라를 안정시키려고 하였다. 그러므로 ‘두 나라의 공을 이루려 했다.’고 말한 것이다.”라고 하였다.
案舊注非 高注尤謬 穰侯得罪憂死일새 下文 明斥其非하니 不須諷也
살펴보건대 구주舊注가 틀렸고, 고유의 주는 더욱 틀렸다. 양후가 죄를 얻어 죽을까 근심했기 때문에 아래 글에 그의 잘못을 분명히 지적하였으니 반드시 비꼰 것은 아니다.
史傳云 異父弟 姓魏氏 其先楚人이라하니 則非魏人明矣 又屢用兵於魏하니 何云安魏乎
사기史記≫ 〈양후열전穰侯列傳〉에 “양후穰侯선태후宣太后의 아버지가 다른 아우로서 위씨魏氏이고, 선조先祖나라 사람이다.” 하였으니, 그렇다면 위나라 사람이 아닌 것이 분명하다. 또 여러 차례 위나라에 쳐들어가서 전쟁하였으니, 어찌 위나라를 안정시키려고 했겠는가.
蓋穰侯志在倂國拓地 故云 欲成兩國之功耳
양후의 뜻은 나라를 병탄倂呑하여 국토를 개척하려는 데 있었다. 그러므로 ‘두 나라의 공을 이루려 했다.’라고 한 것이다.
역주
역주1 成兩國之功 : 陳千鈞은 “≪史記≫ 〈穰侯列傳〉에 의하면 양후와 白起가 韓․趙․魏를 공격하여 위나라의 卷․蔡陽․長社와 조나라의 觀津을 빼앗았다가, 조나라의 관진을 되돌려주고 秦나라의 군대를 더 많이 파견하여 조나라를 도와 齊나라를 공격하려 했기 때문에 두 나라의 공을 이루려고 한 것이다.”라 하였다.
역주2 宣太后 : 전국시대 秦 惠文王의 妃이고, 昭襄王의 어머니이다. 楚나라 출신으로 芈(미)姓이다. 惠文王이 죽은 후 惠文王后의 아들인 武王이 즉위했으나 3년 만에 죽고, 자신의 아들 소양왕이 즉위하자 王太后가 되어 41년 동안 조정에 나와 황제의 직권을 대행하였다. 宣은 諡號이다.

한비자집해(1) 책은 2019.10.25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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