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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非子集解(1)

한비자집해(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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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비자집해(1)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1-78 以與周武王爲難이니이다 武王將素甲三千하고 戰一日
○先愼曰 策 千下 有領字 張榜本趙本 日作夜하니
高注 一日 甲子之日也 爲號到하야 便剋紂 故曰一日이라하니라
1-79 而破紂之國하야 禽其身하며 據其地而有其民호되 天下莫傷하니이다
○先愼曰 高注 愍也라하니라 傷上 有不字하니


이런 대군大軍을 거느리고 주 무왕周 武王과 대적하였습니다. 무왕은 흰 갑옷을 입은 군사 3천 명을 거느리고 교전交戰한 지 하루 만에
왕선신王先愼:≪전국책戰國策≫ 〈진책秦策〉에는 ‘’자 밑에 ‘’자가 있다. 장방본張榜本조본趙本에 ‘’자가 ‘’로 되어 있으니 틀렸다.
고유高誘에 “‘일일一日’은 갑자일甲子日이니, 태공망太公望이 군사를 호령하여 목야牧野에 이르러 곧 를 이겼기 때문에 ‘일일一日(하루)’이라 했다.”라 하였다.
太公望(≪萬古際會圖像≫)太公望(≪萬古際會圖像≫)
周 武王(≪萬古際會圖像≫)周 武王(≪萬古際會圖像≫)
나라 국도國都를 격파하고 본인을 사로잡았으며, 그의 국토國土를 점거하고 그의 백성을 차지하였으나 천하 사람들이 가엾게 여기지 않았습니다.
왕선신王先愼고유高誘에 “‘’은 ‘(가엾다)’이다.” 하였다. ≪전국책戰國策≫ 〈진책秦策〉에는 ‘’자 위에 ‘’자가 있으니 틀렸다.


역주
역주1 太公望 : 姜太公을 말한다. 姓은 姜, 氏는 呂, 이름은 尙이다. 周 文王이 사냥을 나갔다가 渭水 가에서 여상을 만나 대화하고 난 뒤 크게 기뻐하여 “우리 태공(祖父 太王)께서 선생을 기다린 지 오래였다.[吾太公望子久矣]”라고 한 말에서 얻은 別號이다.
역주2 牧野 : 河南省 新鄕市의 別稱이다. 지금의 신향시 北部 지역으로 신향시를 포괄한다. 원래는 地名의 고유명사가 아니고, 殷나라 수도 朝歌(지금의 河南省 淇縣)를 상대하여 이른 말이었다. 이는 ‘郊’ 밖을 ‘牧’, ‘牧’ 밖을 ‘野’라고 하는 일반 명사의 합칭이다.

한비자집해(1) 책은 2019.10.25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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