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19 諫曰 合諸侯
에 不可無禮
니 此存亡之機也
니이다 昔者
爲
에 而
叛之
하고 紂爲
에 而戎狄叛之
는
注
○盧文弨曰 戎은 左昭四年傳作仍하고 黎丘는 史記楚世家作黎山하고 左但云黎라 戎狄은 左傳史記에 俱作東夷라
顧廣圻曰 蒐下
에 當依左傳史記
하야 補而東夷叛之
爲
二句
니 此上下兩事
에 各脫其半也
라
간諫하였다. “제후諸侯와 회맹會盟할 때 무례하게 대해서는 안 되니, 이는 존망存亡이 달린 관건關鍵입니다. 예전에 하걸夏桀이 제후들과 유융有戎에서 회맹할 때 유민有緡이 배반하였고, 상주商紂가 여구黎丘에서 군사 검열을 할 때 융적戎狄이 배반한 것은
注
구주舊注:유융有戎․유민有緡은 모두 나라 이름이다.
○노문초盧文弨:‘융戎’은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 소공昭公 4년에 ‘잉仍’으로 되어 있고, ‘여구黎丘’는 ≪사기史記≫ 〈초세가楚世家〉에 ‘여산黎山’으로 되어 있으며,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에는 단지 ‘여黎’라고만 하였다. ‘융적戎狄’은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과 ≪사기史記≫에 모두 ‘동이東夷’로 되어 있다.
고광기顧廣圻:‘수蒐’자 아래에 의당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과 ≪사기史記≫에 의거하여 “이동이반지 유왕위태실지맹而東夷叛之 幽王爲太室之盟(동이가 배반하였고, 유왕幽王이 태실太室의 맹약을 할 때)”의 두 구句를 보충해야 하니, 이 문장의 위아래 두 가지 일에 각각 그 반절이 탈락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