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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非子集解(4)

한비자집해(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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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비자집해(4)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36-1 將與楚人戰할새問之曰 吾將與楚人戰이어늘 彼衆我寡하니 爲之奈何리오
舅犯曰 臣聞之컨대 繁禮君子 不厭忠信이요
繁縟이라 故曰繁禮라하니라 唯忠信可以學禮 故曰不厭忠信이라하니라


문공文公이 장차 나라와 전쟁을 벌이려고 할 적에 구범舅犯을 불러 물어보았다. “내가 장차 나라와 전쟁을 벌이려고 하는데 저들은 군사가 많고 우리는 군사가 적으니 어떻게 해야 하겠는가?”
구범이 대답하였다. “신이 듣건대 번다한 예법을 지키는 군자君子을 싫어하지 않고,
구주舊注:예법은 번다한 것이므로 “번례繁禮(번다한 예법을 지킴)”라고 하였다. 오직 이 있어야만 예법을 배울 수 있으므로 〈번다한 예법을 지키는 군자는〉 “불염충신不厭忠信(을 싫어하지 않는다.)”이라고 하였다.


역주
역주1 晉文公 : 晉 獻公의 아들로 이름은 重耳인데, 驪姬의 사건으로 인하여 국외에 망명한 지 19년 만에 귀국하여 즉위한 뒤에 春秋五霸 중의 하나가 되었다. 여희의 사건은 여희가 자기 아들 奚齊를 태자로 삼으려고, 태자였던 申生을 무함하여 결국 죽게 만들자 신생의 동생 夷吾와 중이가 외국으로 망명한 일을 가리킨다.
역주2 舅犯 : 狐偃을 가리킨다. 그는 春秋時代 晉나라 사람으로 字가 子犯이다. 晉 文公의 외삼촌이므로 舅犯이라고도 칭하였다. 일찍이 뒤에 진 문공이 된 晉나라의 公子 重耳가 어려운 처지에 빠져 狄 땅으로 도망갈 적에 중이를 따라가 19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늘 호위하며 보좌하였으며, 중이가 본국으로 돌아와 임금이 된 뒤에도 잘 보좌하여 진 문공으로 하여금 패업을 이룰 수 있도록 하였다.

한비자집해(4) 책은 2022.12.25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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