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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非子集解(3)

한비자집해(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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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171 하며 還與荊人戰하야 大敗荊人하고이라가하야 遂成하다
○先愼曰 乾道本 成作城이라 盧文弨云 城字譌라하야늘 今據拾補改하노라


나라의 포위를 풀어주었으며, 군사를 돌려서 나라 군대와 城濮에서 교전하여 초나라 군대를 크게 패배시키고, 돌아오다가 踐土에서 諸侯들과 會盟하여 마침내 衡雍道義를 이루었다.
王先愼乾道本에 ‘’이 ‘’으로 되어 있다. 盧文弨는 ‘’자는 잘못되었다.”라고 했기에 지금 ≪群書拾補≫에 의거하여 고쳤다.


역주
역주1 罷宋圍 : 魯 僖公 27년(B.C.633)에 楚나라와 諸侯의 군대가 宋나라를 포위하자 宋나라의 公孫固가 晉나라에 가서 위급함을 알렸다. 이듬해 28년에 晉나라가 楚나라와 동맹국인 曹나라와 衛나라를 침공하여 宋나라의 포위를 풀고, 城濮에서 楚나라와 전쟁하였다.(≪春秋左氏傳≫)
역주2 城濮 : 춘추시대 衛나라의 땅 이름이다. 지금의 山東省 濮縣 남쪽 70리에 있는 臨濮城이 바로 城濮이라고 한다.
역주3 踐土之盟 : 踐土는 춘추시대 鄭나라의 땅 이름이다. 지금의 河南省 原陽縣 서쪽에 있었다. 晉 文公이 城濮의 전쟁에서 楚나라에 大勝하여 霸主의 지위를 확립한 뒤 이곳에서 諸侯를 소집하여 盟約을 주관하였다.
역주4 衡雍之義 : 衡雍은 춘추시대 鄭나라의 땅 이름이다. 지금의 河南省 原陽縣 서쪽, 踐土의 동북쪽에 있었다. 晉 文公이 돌아오다가 衡雍에 이르러 踐土에 王宮을 짓고 周王을 높이는 道義를 이루었다.

한비자집해(3) 책은 2020.12.29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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