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고전종합DB

韓非子集解(1)

한비자집해(1)

출력 공유하기

페이스북

트위터

카카오톡

URL 오류신고
한비자집해(1)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2-48 韓居中國하야 地不能滿千里로되 而所以得與諸侯班位於天下하야 君臣相保者 以世世相敎事秦之力也일새니이다
○王先謙曰 韓自懿侯後 事見世家者 如昭侯十一年 如秦하고 宣惠王十九年 以太子倉質秦하고
襄王十年 太子嬰朝秦하고 釐王時 兩會秦王하니 非不世世事秦이나
而無世不被秦兵이요 常出兵佐秦伐諸侯 其得秦救 惟釐王二十三年一役而已
所謂戮力一意以不相侵 特策士之游談이니 初無關於事實也


한나라가 중원中原에 있으면서 땅이 사방 천 리를 채우지 못하지만, 천하에 제후들과 같은 반열에 끼어서 군주와 신하가 함께 생존할 수 있었던 까닭은 대대로 가르쳐서 진나라를 섬겼기 때문입니다.
왕선겸王先謙나라가 〈나라를 섬긴 것은〉 의후懿侯 이후로부터이니 이 일이 ≪사기史記≫ 〈한세가韓世家〉에 보인다. 이를테면 소후昭侯 11년에 진나라에 갔고, 선혜왕宣惠王 19년에 태자 이 진나라에 인질로 갔으며,
양왕襄王 10년에 태자 이 진나라에 조현朝見하였고, 이왕釐王 때 두 차례 진나라 왕과 회합하였으니, 대대로 진나라를 섬기지 않은 적이 없었다.
그러나 어느 때고 진나라 군대의 침공을 겪지 않은 적이 없었고 늘 군대를 내어 진나라가 제후를 치는 것을 도왔다. 진나라에게 구원을 받은 것은 오직 희왕 23년 한 차례뿐이다.
이른바 ‘힘을 합치고 뜻을 하나로 모아 서로 침략하지 않았다.’는 것은 단지 책사策士가 유세하여 하는 말이지, 애초에 사실과는 무관하다.



한비자집해(1) 책은 2019.10.25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우)03140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17길 52 낙원빌딩 411호

TEL: 02-762-8401 / FAX: 02-747-0083

Copyright (c) 2022 전통문화연구회 All rights reserved. 본 사이트는 교육부 고전문헌국역지원사업 지원으로 구축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