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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非子集解(3)

한비자집해(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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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비자집해(3)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31-29 參疑廢置之事 明主絶之於內而施之於外 資其輕者하고 輔其弱者하나니 此謂이니라
參伍旣用於內하고 觀聽又行於外 則敵僞得이니 其說在秦侏儒之告言襲하고賜令蓆하니라
○先愼曰 說作席하니라
廟攻이라
○先愼曰 趙本 作廟攻七이라 盧文弨云 此承上參疑廢置爲言이라 故不在六微中이라하고
顧廣圻云 藏本同하고 今本 此下有七字하니라하니라 先愼案 經旣明言六微하니 則不應有七字 此接上文而來 竝不應別標廟攻二字
이라


參疑廢置에 관한 두 가지 일을 현명한 君主國內에서 발생하지 못하도록 단절시키고 외국에 시행되도록 하는 것이다. 〈적대적 국가의〉 권력이 약한 자를 보조하고 地位微弱한 자를 도와주어야 되니 이를 ‘朝廷에서 적을 공략하는 방법[廟攻]’이라 한다.
여러 가지 일을 비교하고 징험하는 방법을 國內에서 쓴 다음에, 관찰하고 탐문하는 방법을 다시 國外에서 시행하면 적대적 국가의 속임수를 간파하게 되는 것이다. 이와 관계되는 해설이 나라의 난쟁이가 惠文君에게 〈자기가 몰래 들은 나라의 계책을〉 한 일에 있다. 그러므로 襄疵나라가 鄴縣을 습격할 것이라고 말해주었고, 嗣公縣令에게 자리를 下賜했던 것이다.
王先愼에 〈‘’자가〉 ‘’으로 되어 있다.
이상은 廟攻이다.
王先愼趙本에 ‘廟攻七’로 되어 있다. 盧文弨는 “이것은 위의 ‘參疑’와 ‘廢置’를 이어받아서 말한 것이다. 그러므로 ‘六微’ 안에 들어 있지 않다.”라고 하였고,
顧廣圻는 “藏本은 이와 같고 今本은 이 아래에 ‘’자가 있으니 잘못이다.”라고 하였다. 나는 살펴보건대 에 이미 ‘六微’라고 분명히 말했으니, 그렇다면 ‘’자가 있는 것은 합당치 않다. 이것은 위의 글과 연결되어 왔으니, ‘廟攻’ 두 글자까지 아울러 별도의 標目으로 잡는 것은 합당치 않다.
이상은 이다.


역주
역주1 廟攻 : 조정에서 제정한 적군과의 전쟁에서 승리하는 策略을 말한다. ‘廟’는 廟堂으로 조정이다.
역주2 惠文君 : 전국시대 秦나라의 君主 惠文王이다. 姓은 嬴, 이름은 駟인데 秦 孝公의 아들이다. 新法 시행으로 많은 원망을 받던 衛鞅을 주살하였고, 君號를 처음으로 王이라 일컬었다. 북쪽의 義渠를 소탕하고 서쪽의 巴蜀을 평정하였으며 동쪽으로 函谷關 밖으로 진출하였고 남쪽으로 商於(상오)를 점령하여 秦나라 統一의 기초를 다졌다.
역주3 襄疵 : 전국시대 魏나라 사람이다. ≪竹書紀年≫에는 穰疵로 되어 있다.
역주4 : 전국시대 魏나라의 城邑으로, 지금의 河北省 臨漳縣 서남쪽에 있었다.
역주5 嗣公 : 전국시대 衛나라의 君主이다. 衛 平侯의 아들로, 秦나라가 君號를 폄하하여 嗣君으로 불렀다고 한다.

한비자집해(3) 책은 2020.12.29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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