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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非子集解(4)

한비자집해(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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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19 則是貞於君也 死君이라도 臣不愧而後爲貞이니라
死而後爲貞이라
○先愼曰 乾道本 下後字作復 拾補 上後字亦作復 盧文弨云 復作後 注不字 疑必이라하고 顧廣圻云 今本 復作後
按復後互誤 生下當更有生字라하니라 先愼按 今本 復作後하니 是也
此言君死後臣生不愧라야 而後爲貞이라
若君朝卒而讐立이로되 遂臣事之 非貞也 此與下文語意相承하야 極爲明顯이라 乾道道藏本 誤後爲復일새 其義遂晦耳 上後字不譌 盧顧說竝非 改從今本이라


이는 군주에 대한 충정忠貞이다. 죽은 군주가 다시 살아나더라도 신하가 부끄럽지 않은 다음에야 충정이라고 할 수 있다.
구주舊注:죽은 군주에게 부끄럽지 않은 다음에야 충정忠貞이라고 할 수 있다.
왕선신王先愼건도본乾道本에 아래 ‘’자는 ‘’로 되어 있다. ≪군서습보群書拾補≫에 위의 ‘’자도 ‘’로 되어 있다. 노문초盧文弨는 “‘’가 ‘’로 된 것은 잘못된 것이다. 구주舊注의 ‘’자는 아마도 ‘’인 듯하다.”라고 하였고, 고광기顧廣圻는 “금본今本에 ‘’는 ‘’로 되어 있다.
살펴보건대 ‘’와 ‘’는 서로 잘못 바뀌었다. ‘’ 아래에 다시 ‘’자가 있어야 한다.”라고 하였다. 내가 살펴보건대 금본今本에 ‘’는 ‘’로 되어 있으니, 옳다.
이것은 군주가 죽은 뒤 신하가 살아 있어도 부끄럽지 않음을 말한 것이니, 순식荀息이 〈 헌공獻公이 죽은 뒤〉 태자太子 해제奚齊를 세우고 탁자卓子를 세운 것과 같은 경우인 다음에야 충정忠貞이라 할 수 있다.
만약 군주가 하루아침에 죽고 원수가 즉위하였는데도 결국 신하로서 원수를 섬기면 충정忠貞이 아니다. 이것이 아래 글과 의미가 서로 이어져서 매우 분명하게 드러난다. 건도본乾道本도장본道藏本에 ‘’가 잘못 ‘’로 되어 있었으므로 그 의미가 마침내 모호해진 것이다. 위의 ‘’자는 잘못되지 않았으니, 노문초의 설과 고광기의 설이 모두 틀렸다. 금본今本을 따라 고쳤다.


역주
역주1 (後)[復] : 저본에는 ‘後’로 되어 있으나, ≪韓非子新校注≫ 諸家의 注에 의거하여 ‘復’로 바로잡았다. 王先愼은 ‘後’로 교감을 하여, 군주가 죽은 뒤에 신하가 살아 있어도 부끄럽지 않은 것이라 하였다. 그러나 ≪國語≫ 〈晉語〉에 “死人復生不悔 生人不愧 貞也(죽은 사람이 다시 살아나도 후회하지 않고 살아있는 사람은 부끄럽지 않은 것이 ‘貞’이다.)”라고 하였고, ≪史記≫ 〈趙世家〉에 “死者復生 生者不愧(죽은 사람이 다시 살아나더라도 살아 있는 사람이 부끄러워하지 않는다.)”라고 하였고, ≪春秋公羊傳≫ 僖公 10년에 “使死者反生 生者不愧乎其言 則可謂信矣(설사 죽은 사람이 도로 살아나더라도 살아있는 사람이 그 말에 부끄럽지 않으면 ‘信’이라고 할 수 있다.)”라고 나오는 것으로 보아, 이 말은 본래 옛사람의 成語로 보이며, 따라서 ‘後’보다 ‘復’가 타당해 보인다. 王先愼의 교감을 따르지 않았다.
역주2 (皆)[愧] : 저본은 ‘皆’로 되어 있으나, 의미가 불분명하여 ≪韓非子新校注≫ 陳奇猷의 설에 의거하여 ‘愧’로 바로잡았다.
역주3 荀息立奚齊立卓子之類 : 荀息은 春秋時代 晉나라의 大夫로, 字는 叔이다. 虞나라에게 길을 빌려 虢나라를 滅하고 돌아오는 길에 虞나라마저 멸망시키는 계책을 내어 실행하였다. 뒤에 晉 獻公이 죽고 太子 奚齊가 살해되자 卓子를 세웠으나 탁자가 피살될 때 순식도 죽었다.

한비자집해(4) 책은 2022.12.25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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