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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非子集解(1)

한비자집해(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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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7 天下又而軍어늘
천하 제후국의 군대가 또 집결하여 화하華下에 주둔하였는데,
○顧廣圻曰 周 當作意 下文云 天下皆比意甚固라하고 兩意字 皆作志하니라
고광기顧廣圻:‘’는 응당 ‘’가 되어야 하니, 아래 글에 ‘천하개비의심고天下皆比意甚固(천하의 제후국들이 한마음으로 매우 굳게 연합하다.)’라 하였고, ≪전국책戰國策≫ 〈진책秦策〉에는 두 ‘’자가 모두 ‘’로 되어 있다.
王先謙曰 高注 華下 華山之下也라하니라 案據史記紀表世家參之컨대 秦昭王九年 하고
왕선겸王先謙고유高誘에 “‘화하華下’는 화산華山의 아래다.” 하였다. ≪사기史記≫ 〈진본기秦本紀〉․〈육국표六國表〉․〈세가世家〉에 의거하여 참고하고 살펴보건대 진 소왕秦 昭王 9년(B.C.298)에 이 함께 함곡函谷에서 진나라 군대를 패배시켰고,
十一年 하니 文蓋指此
11년에 중산中山이 함께 진나라를 공격하였으니, 이 글은 이 일을 가리킨 듯하다.
天官書 中國山川 東北流하야 首在하고 尾沒勃碣이라하야늘 張守節所謂自南山華山渡河하야 東北盡碣石者
사기史記≫ 〈천관서天官書〉에 “중국의 산천이 동북쪽으로 흘러가서 머리는 농촉隴蜀에 있고, 꼬리는 발해渤海갈석碣石에서 침몰되었다.” 하였는데, 장수절張守節이 이른바 “남산南山화산華山으로부터 황하를 건너 동북쪽으로 내려가 갈석에서 다하였다.”는 것이다.
是函崤諸山 皆華嶽支麓이라 故函谷亦得稱爲華下
이는 함곡函谷효산崤山이 모두 화악華嶽에서 갈려 나온 산이다. 그러므로 함곡도 화하라고 일컬을 수 있다.
戰國之兵 始終未踰秦關一步하니 華山之下 固非天下所能軍也 比意 猶言合謀
전국시대(육국六國)의 군대가 처음부터 끝까지 진나라의 관문을 한 발짝도 넘지 못했으니 화산의 아래는 본디 천하 제후국의 군대가 주둔할 수 있는 곳이 아니다. ‘비의比意’는 ‘합모合謀(함께 모의함)’라는 말과 같다.
역주
역주1 比周 : 顧廣圻와 王先謙은 모두 ‘周’를 ‘意’가 되어야 마땅하다고 하여 ‘合謀’와 같은 뜻으로 이해하였다. 그러나 陳奇猷는 ‘比周’가 이 책에서 여러 차례 ‘集結’의 뜻으로 쓰였음을 例示로 들어 주장하였기에 ‘집결’로 번역하였다.
역주2 華下 : ‘華下’를 王先謙은 ‘華山의 아래’라 하고, 高亨․太田方․陳奇猷는 ‘華陽의 아래’라고 주장하였다. 太田方은 ‘華陽’은 옛 華國의 땅으로 춘추시대에는 鄭나라에, 전국시대에는 韓나라에 속했는데 지금의 河南省 新鄭市 동남의 華陽亭이라고 하였다.
역주3 魏齊韓 共敗秦軍函谷 : ≪史記≫ 〈魏世家〉 哀王 21년에 보인다.
역주4 齊韓魏趙宋中山 共攻秦 : ≪史記≫ 〈秦本紀〉 昭襄王 11년에 보인다.
역주5 隴蜀 : 隴右와 西蜀을 아울러 말한다. 농우는 대략 지금의 甘肅省 六盤山 서쪽과 黃河 동쪽의 일대 지역을 말한다. 서촉은 지금의 四川省인데 서쪽에 위치한다 하여 서촉이라 한다.

한비자집해(1) 책은 2019.10.25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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