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고전종합DB

韓非子集解(1)

한비자집해(1)

출력 공유하기

페이스북

트위터

카카오톡

URL 오류신고
한비자집해(1)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10-129 君所知也니이다 人之情 莫不愛其子어늘 今蒸其子以爲膳於君하니 其子弗愛어늘 又安能愛君乎잇가
임금님께서도 알고 계시는 일입니다. 일반적인 인정은 자기의 자식을 사랑하지 않는 이가 없는데, 지금 역아는 자기의 자식을 삶아 음식을 만들어 임금님께 바쳤으니, 자기의 자식도 사랑하지 않는데 또 어찌 임금님을 사랑하겠습니까?”라고 하였다.
公曰 然則孰可 管仲曰 하니 其爲人也 堅中而廉外하고 少欲而多信하니이다
환공이 “그렇다면 누가 좋겠소?” 하고 물었다. 관중은 “습붕隰朋이 될 만합니다. 그는 사람됨이 의지意志는 굳세고 행실行實은 청렴하며 사욕私欲이 적고 성신誠信함이 많습니다.
夫堅中이면 則足以爲表 廉外 則可以大任이요 少欲이면 則能臨其衆이요 多信이면 則能親隣國이니이다
의지가 굳세면 모범이 되기에 충분하고 행실이 청렴하면 대임大任을 담당할 만하고 사욕이 적으면 민중民衆을 잘 다스릴 수 있고 성실함이 많으면 이웃 나라와 친밀하게 잘 지낼 수 있습니다.
此霸者之佐也 君其用之하소서 君曰 諾 居一年餘 管仲死하니 君遂不用隰朋而與竪刁하다
이런 사람이 패자霸者의 보좌감이니 임금님께서는 그를 임용하십시오.”라고 말하였다. 환공이 “좋다”라고 하였다. 1년 남짓 지난 뒤에 관중이 죽으니, 환공은 마침내 습붕을 임용하지 않고 수조豎刁를 임용하여 그 자리를 주었다.
刁涖事三年 桓公南遊堂阜러니 竪刁率易牙衛公子開方及大臣爲亂하다
수조가 정사政事를 맡은 지 3년 만에 환공이 남쪽 당부堂阜에 가서 유람하고 있었는데 수조가 역아와 위나라 공자 개방 및 대신大臣들을 거느리고 반란을 일으켰다.
桓公渴餒而하야 身死三月不收하니 蟲出于戶하니라
환공이 목이 마르고 굶주린 상태로 남문 침전南門 寢殿의 공을 가두어둔 방에서 죽었고, 죽은 지 3개월이 되도록 시신을 거두지 않아서 구더기가 문 밖으로 기어 나왔다.
○先愼曰 二柄篇難一篇 戶作尸하니
왕선신王先愼:≪한비자韓非子≫ 〈이병편二柄篇〉과 〈난일편難一篇〉에 ‘’자가 ‘’자로 되어 있으니 오자이다.
역주
역주1 隰(습)朋 : 춘추시대 齊나라의 公族으로, 桓公 때 大夫가 되어 管仲을 도와 환공이 霸業을 이루는데 큰 역할을 하였다. 시호는 成子이다.
역주2 死南門之寢公守之室 : ≪呂氏春秋≫ 〈知接篇〉에는 “裳衣袂而絶乎壽宮(옷소매를 덮어쓰고 수궁에서 절명하였다.)”로 되어 있고, 高誘의 注에 “壽宮 寢堂(수궁은 침당이다.)”이라 하였다. 陳奇猷는 ≪韓非子新校注≫에서 “이 기록에 의거하면 ≪韓非子≫의 이 문구 ‘公守’는 응당 ‘壽宮’이 되어야 한다. 곧 ‘壽宮’의 성음이 잘못 ‘守公’이 되고, 뒷사람이 또 도치하여 ‘公守’로 만들었다.” 하였다. 역자는 이를 따르지 않고 저본대로 번역한 다음 참고로 이 설을 각주로 두었다.

한비자집해(1) 책은 2019.10.25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우)03140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17길 52 낙원빌딩 411호

TEL: 02-762-8401 / FAX: 02-747-0083

Copyright (c) 2018 By 전통문화연구회 All rights reserved. 본 사이트는 교육부 고전문헌국역지원사업 지원으로 구축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