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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非子集解(4)

한비자집해(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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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78 하니 城之이러니이다
知伯出 魏宣子御하고 韓康子爲驂乘하니 知伯曰 始吾不知水可以滅人之國이러니 吾乃今知之로라 하고 이로다
魏宣子肘韓康子한대 康子踐宣子之足하니 肘足接乎車上하야 而知氏分於晉陽之下러니이다
今足下雖强이나 未若知氏 韓魏雖弱이나 未至如其晉陽之下也니이다
○先愼曰 其字 疑衍이라


진수晉水를 터서 〈 안으로〉 물을 흘려보내니, 이 물에 잠기지 않은 것이 삼판三板 정도에 불과했습니다.
智伯이 강물을 터서 晉陽城을 잠기게 하다[智伯決水灌晉陽]智伯이 강물을 터서 晉陽城을 잠기게 하다[智伯決水灌晉陽]
지백知伯이 나왔을 적에 위선자魏宣子는 수레를 몰고 한강자韓康子시위侍衛하여 모시고 탔는데, 지백知伯이 말하기를 ‘나는 애초에 물이 남의 나라를 망하게 하리라는 것을 몰랐었는데, 이제야 알았노라. 분수汾水안읍安邑에 물을 흘려보내 잠기게 할 수 있고, 강수絳水평양平陽에 물을 흘려보내 잠기게 할 수 있겠구나.’ 하였습니다.
그러자 위선자魏宣子가 팔꿈치로 한강자韓康子의 〈옆구리를 찔러 경계의 뜻을 보이자〉 한강자韓康子위선자魏宣子의 발을 밟아 〈알았다는 뜻을 표했습니다.〉 수레 위에서 팔꿈치와 발이 접촉함으로써 지씨知氏의 땅이 진양晉陽의 아래에서 쪼개졌습니다.
지금 군주께서 강성하다고 하지만 지씨知氏만 못하고, 나라와 나라가 약하다고는 하지만 진양성晉陽城 아래에 있을 때 정도는 아닙니다.
왕선신王先愼:〈‘기진양지하야其晉陽之下也’의〉 ‘’자는 연문衍文인 듯하다.


역주
역주1 灌以晉水 : 知伯이 趙襄子에게 땅을 달라고 요구하였으나 주지 않자 趙氏의 도성인 晉陽을 공격하여 주변에 흐르는 晉水의 물을 끌어들여 晉陽城 안으로 흘려보냈다.
역주2 未沈者三板 : 城의 三板 정도만 물이 들어차지 않았다는 말이다. 板은 옛날 흙담을 다져 쌓을 때 양옆에 대는 널빤지로, 한 板의 높이는 두 자[尺]이고, 길이는 여덟 자이다.
역주3 汾水可以灌安邑 : 汾水는 山西省 寧武縣 管涔山에서 발원하여 서쪽으로 흘러 平陽을 지나 黃河로 유입하는 강이다. 安邑은 魏宣子의 封邑으로, 지금의 山西省 夏縣에 있었다. 강이 경유하는 지역으로 보아 安邑과 다음 조의 平陽이 서로 바뀌었다는 설이 있다.(≪史記≫ 〈趙世家〉, ≪水經注≫ 〈汾水〉)
역주4 絳水可以灌平陽 : 絳水는 山西省 屯留縣의 북서쪽 盤秀口에서 발원하여 潞城縣 경계의 濁漳水로 흘러드는 강이다. 平陽은 韓康子의 封邑으로, 지금의 山西省 臨汾市 남쪽에 있었다.(≪後漢書≫ 〈郡國志〉, ≪讀史方輿紀要≫ 〈山西 平陽府 絳水〉)

한비자집해(4) 책은 2022.12.25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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