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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非子集解(1)

한비자집해(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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先慎案 史志載韓子五十五篇이니 與今本合하야 似無殘脫이나 而其佚文不下百餘條
今推究其義하야 凡可補者 悉注本文之下하고 其不能附麗者 都為一類하야 俾後之讀者有可考焉이라
明主之治國也 適其時事以致財物하고 論其稅賦以均貧富하며 厚其爵祿以盡賢能하고 重其刑罰以禁姦邪하야
使民以力得富하고 以事致貴하며 以過受罪하고 以功置賞하야 而不望慈惠之賜 此帝王之政也注+群書治要卷四十引이라
解孤與邢伯柳為怨이러니 趙簡主問於解狐曰 孰可為上黨守 對曰邢伯柳可니이다
簡主曰非子之讐乎 對曰臣聞忠臣之舉賢也 不避仇讐注+以上又見藝文類聚卷二十二 竝作荊이라하고 其廢不肖也 不阿親近이라하니이다
簡主曰善하다하고 遂以為守하다 邢伯柳聞之하고 乃見解孤謝하니 解孤曰舉子 公也 怨子 私也 往矣어다 怨子如異日注+群書治要卷四十引이라이라하니라
師曠鼓琴 有玄鶴銜明月珠在庭中舞注+以上又見初學記卷十六注引이라 失珠하니 曠掩口而笑注+北堂書鈔卷一百九引이라
孫叔敖 冬日黑裘하고 夏日葛衣注+北堂書鈔卷一百二十九引이라
孫叔敖相楚 糲飯菜羹注+以上又見初學記卷二十六注引이라 相楚 作為令尹이라 枯魚之膳注+北堂書鈔卷一百四十三引이라이라
昔齊桓公入山問父老호되 此為何谷
答曰臣舊畜牛生犢이어늘 以子買駒하니 少年謂牛不生駒라하고 遂持而去 傍隣謂臣愚라하야 遂名愚公谷注+藝文類聚卷九引이라 事又見劉向說苑이라이니이다
勢者 君之馬也 威者 君之輪也 勢固則輿安이요 威定則策勁이니 臣從則馬良이요 民和則輪利
為國有失於此 覆輿奔馬하고 折策敗輪矣 輿覆馬奔하고 策折輪敗 載者安得不危注+藝文類聚卷五十二引이라리오
聖人立法 賞足以勸善이요 威足以勝暴 備足以必完注+藝文類聚卷五十四引이라이라
水激則悍이요 矢激則遠注+太平御覽卷三百五十引이라이라
楚王有白猿이러니 王自射之 則搏矢而熙注+ 戲也 使養由基射之하야 始調弓矯矢하니 未發而猿擁樹號矣注+由基 楚共王之臣養叔也 調 調張也 直也 抱也 案此見太平御覽卷三百五十引이라 事類賦卷十三注引同이라 熙字作嬉戲二字 無始字
天下有至貴而非勢位也 有至富而非金玉也 有至壽而非千歲也
願恕反性則貴矣 適情知足則富矣 明生死之分則壽矣注+太平御覽卷四百五十九引이라
注+太平御覽卷四百五十九引이라이라
魏武侯浮西河而下러니 中流謂吳起曰 美哉로다 山河之固 魏國之寶也라하니
對曰 在德이요 不在險이니이다 昔三苗氏左洞庭而右彭蠡로되 德義不修하야 而禹滅之하고
夏桀之居 左河濟而右太華하고 伊闕在其南하고 羊腸在其北이로되 修政不仁하야 湯放之하고
商紂之國 左孟門右太行하고 常山在其北하며 大河經其南이로되 修行不德하야 而武王滅之니이다
王恃險而不修德이면 舟中之人 盡敵國也리이다 武侯曰善注+太平御覽卷四百五十九引이라하다
輿人成輿 則願人富貴也 非輿人仁이라 不富不貴 則輿不售也注+太平御覽卷四百七十二引이라일새라
加脂粉이면進御 蒙不潔이면 則西施棄野 學之爲脂粉亦厚矣注+太平御覽卷六百七引이라
勢者 君之馬也 威者 君之策也 臣者 君之馬也 民者 君之輪也
勢固則輿安이요 威定則策勁이요 臣順則馬良이요 人和則輪利 而為國皆失此 有覆輿走馬折策敗輪矣注+太平御覽卷六百二十引이라 與藝文類聚引文不合이라리라
為人君者猶壺也 民亦水也 壺方水方이요 壺圓水圓注+外儲說 壺作盂 太平御覽卷六百二十引이라이라
孫叔敖相楚 衣羖羊裘注+太平御覽卷六百九十四引이라
公儀休相魯 其妻織布어늘 休曰 汝豈與世人爭利哉아하고 遂燔其機注+太平御覽卷八百二十引이라
舜耕於歷山 農者讓畔하고 漁於河濱 漁者讓澤注+太平御覽卷四百二十四이라 又八百十二引호되 歷山農侵畔이러니 舜往耕 其年讓畔이라하니라이라
物有所宜 才有所施 各處其宜 故上下無為注+意林卷一引이라니라
愛人 不得獨利하고 待譽而後利之하며 憎人 不得獨害하고 待非而後害之注+意林卷一引이라니라
不蔽人之美하고 不言人之惡注+意林卷一引이라이라


내가 살펴보건대, 사서史書의 기록에 ≪한자韓子≫가 55편이라 기재되어 있으니, 금본今本과 합치되어 잔결되거나 빠진 부분이 없는 듯하지만 그 일문佚文이 백여 조목 이하가 되지 않는다.
지금 그 뜻을 고구하여 보충할 수 있는 부분은 모두 본문本文 아래에 로 달고, 붙일 수 없는 부분은 모두 한 부류로 만들어 훗날 읽는 자로 하여금 고찰할 수 있도록 하였다.
현명한 군주가 나라를 다스리는 방법은 시사時事에 알맞게 재물財物을 축적하고 세부稅賦를 따져서 빈부貧富를 균등하게 하며, 작록爵祿를 후하게 주어 현능賢能한 인재를 모두 등용하고 형벌刑罰을 엄중히 하여 간사姦邪한 이들을 금지하여,
백성들이 자신의 노력으로 부유해지고 자신의 일로써 존귀해지며 잘못을 저지르면 죄를 받고 공이 있으면 상을 받아 군주의 은혜가 내려지기를 기대하지 않게 하는 것이니, 이것이 제왕帝王의 정치이다.注+군서치요群書治要≫ 권40에서 인용하였다.
해고解孤형백류邢伯柳와 원수지간이었는데 조간주趙簡主가 해호에게 묻기를 “누구를 상당上黨의 태수로 삼을만 한가?”라고 하니, 대답하기를 “형백류가 좋습니다.”라고 하였다.
간주簡主가 말하기를 “그대의 원수가 아닌가?”라고 하니, 대답하기를 “신이 듣건대 충신忠臣이 현자를 천거함에 원수를 피하지 않고注+이상은 또 ≪예문유취藝文類聚≫ 권22에 보인다. ‘’은 모두 ‘’으로 되어 있다. 불초한 자를 버림에 가까운 사람이라도 사정私情을 두지 않는다고 했습니다.”라고 하였다.
간주簡主가 “훌륭하다.”라고 말하고 마침내 형백류를 태수로 삼았다. 형백류가 이 소식을 듣고 해고를 만나 사례하니, 해고는 “그대를 천거하는 것은 공적인 일이고 그대를 원수로 여기는 것은 사적인 일이니, 그만 갈지어다. 그대를 원수로 여기는 것은 전날처럼 변함이 없다.”라고 말했다.注+군서치요群書治要≫ 권40에서 인용하였다.
사광師曠을 연주하자 검은 학이 명월주明月珠를 입에 물고 뜰 가운데 와서 춤을 추다가注+이상은 또 ≪초학기初學記≫ 권16의 에서 인용한 부분에 보인다. 명월주를 놓치니 사광師曠이 입을 가리고 웃었다.注+북당서초北堂書鈔≫ 권109에서 인용하였다.
손숙오孫叔敖는 겨울에 검은 갖옷을 입고 여름에 갈포옷을 입었다.注+북당서초北堂書鈔≫ 권129에서 인용하였다.
손숙오孫叔敖나라 재상이 되었을 때 거친 밥과 나물국에注+이상은 또 ≪초학기初學記≫ 권26 에서 인용한 부분에 보인다. ‘상초相楚’는 ‘위령윤為令尹’으로 되어 있다. 마른 생선 따위로 상을 차렸다.注+북당서초北堂書鈔≫ 권143에서 인용하였다.
예전 재 환공齊 桓公이 산에 들어가 부로父老에게 묻되 “이곳은 무슨 골짜기인가?” 하였다.注+예문유취藝文類聚≫ 권9에서 인용하였다. 이 일은 또 유향劉向의 ≪설원說苑≫에 보인다.
부로父老가 대답하기를 “이 예전에 기른 소가 송아지를 낳았기에 그 송아지를 팔아서 망아지를 사왔는데, 젊은 사람이 소는 망아지를 낳지 못한다면서 마침내 그 망아지를 데리고 가버렸습니다. 이웃 사람들이 을 바보라고 불러서 드디어 우공愚公의 골짜기라고 이름을 지었습니다.”라고 하였다.
권세는 군주의 말이요 위엄은 군주의 수레바퀴이다. 권세가 견고하면 수레가 안정되고 위엄이 안정되면 말채찍도 굳세니, 신하가 잘 따르면 말이 훌륭해지고 백성이 화합하면 수레바퀴가 편리해진다.
나라를 다스림에 이것을 잃으면 수레는 엎어지고 말은 달아나며 말채찍은 꺾이고 수레바퀴는 망가진다. 수레가 엎어지고 말이 달아나며 채찍이 꺾이고 수레바퀴가 망가지게 되면 수레에 타고 있는 자가 어찌 위태롭지 않겠는가.注+예문유취藝文類聚≫ 권52에서 인용하였다.
성인聖人을 세움에 상을 내리면 을 권면하게 되고, 위엄을 세우면 포악을 제어하게 되며, 대비하면 완전함을 기필하게 된다.注+예문유취藝文類聚≫ 권54에서 인용하였다.
물이 부딪쳐 흐르면 거세지고, 화살이 빠르면 멀리 날아간다.注+태평어람太平御覽≫ 권352에서 인용하였다.
초왕楚王에게 흰 원숭이가 있었는데, 초왕楚王이 스스로 활을 쏘면 날아온 화살을 낚아채서 가지고 놀았다.注+’는 ‘(희롱하다)’이다. 양유기養由基로 하여금 활을 쏘게 하여 그가 활에 시위를 얹어 똑바로 화살을 겨누면 발사하기도 전에 흰 원숭이가 나무를 안고 울었다.注+양유기養由基나라 공왕共王의 신하 양숙養叔이다. ‘調’는 활에 시위를 얹는 것이요, ‘’는 화살을 직선으로 겨누는 것이요, ‘’은 나무를 안는 것이다. 살펴보건대 이것은 ≪태평어람太平御覽≫ 권350의 인용한 부분에 보인다. ≪사류부事類賦≫ 권13의 에 인용한 부분과 동일하다. ‘’자는 ‘희희嬉戲’ 두 자로 되어 있고, ‘’자는 없다.
천하의 지극한 존귀는 권세나 지위를 뜻하는 것이 아니요, 지극한 부유는 금옥金玉을 뜻하는 것이 아니요, 지극한 장수는 천세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남을 헤아리고 본성으로 돌이키는 것이 존귀함이요, 실정에 알맞게 만족할 줄 아는 것이 부유함이요, 생사의 구분을 밝게 아는 것이 장수함이다.注+태평어람太平御覽≫ 권459에서 인용하였다.
목탁木鐸은 소리를 내는 것 때문에 자신을 훼손시키고 고촉膏燭은 불을 밝히는 것 때문에 자신을 녹인다.注+태평어람太平御覽≫ 권459에서 인용하였다.
위 무후魏 武侯가 배를 타고 서하西河를 내려갔는데 중류에 이르러 오기吳起에게 말하길 “아름답구나. 산하山河의 험고함이여! 나라의 보배이다.”라고 하였다.
오기가 대답하기를 “〈나라의 보배는〉 사람의 에 달려 있지, 산하山河의 험고함에 달려 있지 않습니다. 옛날 삼묘씨三苗氏는 좌측에는 동정호洞庭湖, 우측에는 팽려호彭蠡湖가 있었으나 덕의德義를 닦지 않아 임금이 멸망시켰고,
하걸夏桀이 있던 곳은 좌측에는 하수河水제수濟水, 우측에는 태화산太華山이 있고 이궐伊闕이 남쪽에 있고 양장산羊腸山이 북쪽에 있었는데 정사를 펼친 것이 불인不仁하여 임금이 방벌放伐하였고,
상주商紂의 나라는 좌측은 맹문산孟門山 우측은 태항산太行山이고 상산常山이 북쪽에 있으며 대하大河가 남쪽을 흘러갔으나 행실이 부덕하여 무왕武王이 멸망시켰습니다.
왕이 산하山河의 험고함을 믿고서 덕을 닦지 않으시면 배 안에 있는 사람들이 모두 적국의 사람들이 될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무후武侯가 “훌륭하도다.”라고 말했다.注+태평어람太平御覽≫ 권459에서 인용하였다.
수레를 만드는 장인이 수레를 만들면 남들이 부귀해지기를 바란다. 이는 수레를 만드는 장인이 해서가 아니라 남들이 부귀하지 않으면 자기가 만든 수레가 팔리지 않기 때문이다.注+태평어람太平御覽≫ 권472에서 인용하였다.
연지臙脂백분白粉을 바르면 막모膜母도 군주를 모실 수 있고, 더러운 것을 뒤집어쓰면 서시西施도 초야에 버려지니, 연지와 백분을 바르는 것을 배우는 것 또한 중요한 일이다.注+태평어람太平御覽≫ 권607에서 인용하였다.
권세는 군주의 말이요 위엄은 군주의 말채찍이요 신하는 군주의 수레를 끄는 말이요 백성은 군주의 수레바퀴이다.
권세가 견고하면 수레가 안정되고 위엄이 안정되면 말채찍도 굳세어지고 신하가 잘 따르면 말이 훌륭해지고 백성이 화합하면 수레바퀴가 편리해진다. 나라를 다스림에 이것을 모두 잃으면 수레는 엎어지고 말은 달아나며 말채찍은 꺾이고 수레바퀴는 망가진다.注+태평어람太平御覽≫ 권620에서 인용하였다. ≪예문유취藝文類聚≫에서 인용한 글과는 합치되지 않는다.
군주는 병과 같고 백성은 또한 병에 담긴 물이니, 병이 네모지면 물도 네모지고 병이 둥글면 물도 둥글다.注+외저설外儲說〉에는 ‘’자가 ‘’로 되어 있다. ≪태평어람太平御覽≫ 권620에서 인용하였다.
손숙오孫叔敖나라 재상이 되었을 때 고양羖羊(검은색 양)의 가죽으로 만든 갖옷을 입었다.注+태평어람太平御覽≫ 권694에서 인용하였다.
공의휴公儀休나라 재상이 되었을 때 그의 가 길쌈을 하였는데 공의휴公儀休가 말하길, “그대는 어째서 세상 사람들과 이익을 다투는가.”라고 하고 마침내 베틀을 불태워버렸다.注+태평어람太平御覽≫ 권820에서 인용하였다.
임금이 역산歷山에서 농사를 지을 때 농부들이 밭두둑을 양보하였고, 하수河水 가에서 물고기를 잡을 때 어부들이 뇌택雷澤을 양보하였다.注+태평어람太平御覽≫ 권424에 보인다. 또 권812에서 인용하면서 “역산歷山의 농민들은 서로 밭두둑을 침범하였는데, 임금이 가서 농사를 짓자 그 해에 밭두둑을 서로 양보하였다.”라고 하였다.
사물은 제각기 알맞은 성질이 있고 재능도 다 쓰일 데가 있으니, 〈사람을〉 제각기 알맞은 곳에 두어야 한다. 〈그렇게 하면〉 그 때문에 군주와 신하가 작위作爲를 하지 않게 된다.注+의림意林≫ 권1에서 인용하였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독단적으로 이익을 주지 못하고 측근들의 칭찬을 기다린 뒤에 이익을 주며, 미워하는 사람에게 독단적으로 해로움을 주지 못하고 측근들의 비난을 기다린 뒤에 해로움을 준다.注+의림意林≫ 권1에서 인용하였다.
남의 훌륭한 점은 가리지 않고, 남의 악한 일은 말하지 않는다.注+의림意林≫ 권1에서 인용하였다.


역주
역주1 木鐸以聲自毀 膏燭以明自爍 : ≪太平御覽≫ 권459에는 “吳鐸以聲自毁 高燭以明自鑠”으로 되어 있다.
역주2 膜母 : 黃帝의 네 번째 妃의 이름으로 嫫母라고도 부른다. 어진 덕과 품행이 있었으나 모습이 추하다는 이유로 세인들의 비난과 조롱을 받았다. 흔히 醜女의 대명사로 쓰인다.

한비자집해(1) 책은 2019.10.25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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