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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非子集解(1)

한비자집해(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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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1 荊王君臣亡走하야於陳하니이다
초왕과 신하들이 도망쳐 동쪽의 진성陳城에 가서 지켰습니다.
○張文虎曰 服 當依策作伏이라 史記楚世家 頃襄王二十一年 秦將 遂拔我郢하야 燒先王墓하고 夷陵하니
장문호張文虎:‘’은 응당 ≪전국책戰國策≫ 〈진책秦策〉에 의거하여 ‘’이 되어야 한다. ≪사기史記≫ 〈초세가楚世家〉에 “경양왕頃襄王 21년(B.C.278)에 나라 장군 백기白起가 마침내 우리의 영도郢都를 함락하고서 선왕先王의 무덤을 불태우고 왕릉王陵을 파헤쳐 평지로 만드니,
楚襄王兵散하야 遂不復戰하고 東北保於陳城注+六國表 作王亡走陳이라하고 白起列傳 作東走徙陳이라하니라이라하다 故云伏이니 謂竄伏也
초 양왕楚 襄王은 군사가 흩어져서 마침내 다시 전쟁하지 못하고 동북쪽으로 진성陳城에 가서 지켰다.” 하였다.注+사기史記≫ 〈육국표六國表〉에 ‘왕망주진王亡走陳(왕이 도망쳐 진성으로 달아났다.)’으로 되어 있고, ≪사기史記≫ 〈백기열전白起列傳〉에 ‘동주사진東走徙陳(동쪽으로 달아나 진성陳城으로 옮겼다.)’으로 되어 있다. 그러므로 〈≪전국책戰國策≫ 〈진책秦策〉에〉 ‘’이라 한 것이니, ‘찬복竄伏(도망쳐서 숨음)’임을 말한 것이다.
又曰 此秦昭襄王二十九年事 秦策 以此篇爲張儀說秦王文이라 案儀以秦武王元年 去秦入梁하니 在前三十三年矣
장문호張文虎:이 일은 진 소양왕秦 昭襄王 29년(B.C.278)의 일인데, ≪전국책戰國策≫ 〈진책秦策〉에 이 장의張儀진왕秦王에게 유세遊說한 글이라 하였다. 살펴보건대 장의는 진 무왕秦 武王 원년(B.C.310)에 진나라를 떠나 대량大梁(나라의 도읍)에 들어갔으니, 이보다 33년 전의 일이다.
又下文 稱秦攻魏하야 軍大梁이라가 白起擊魏華陽軍이라하고하얀 更在其後하니 足以明國策之誤矣
또 〈〈진책秦策〉의〉 아래 글에 “진나라가 나라를 공격하여 대량大梁에 주둔하였다가 백기가 위나라 화양華陽의 군대를 공격하였다.” 하였고, 장평長平의 전쟁에 있어서는 더욱 그 뒤에 있었던 일이니, ≪전국책戰國策≫ 〈진책秦策〉의 오류를 증명하기에 충분하다.
역주
역주1 : ≪戰國策≫ 〈秦策〉에 ‘伏’으로 되어 있으나, ‘服’은 ‘保’와 통용이라는 劉師培의 설을 옳다고 한 ≪韓非子新校注≫를 따라 ‘지키다’로 번역하였다.
역주2 白起 : 전국시대 秦나라의 뛰어난 군사 전략가로 전국시대 廉頗․李牧․王翦 등과 四大名將의 한 사람이다. 본래의 이름은 公孫起이다. 昭襄王 때 韓․魏 등 여러 나라와의 전쟁에서 연속 승리하고, 楚나라의 國都 郢을 공격하여 점령한 공으로 武安君에 봉해졌다. 趙나라 長平의 전투에서 조나라 장군 趙括의 군대를 大破하고 항복한 조괄의 군사 40만 명을 묻어 죽였다. 뒤에 范雎와 不和하여 병졸로 강등되었다가 賜死되었다.
역주3 長平之事 : 전국시대 秦나라의 장군 白起가 趙나라의 장군 趙括을 대패시키고 항복한 조나라 군사 40만 명을 묻어 죽인 전쟁을 이른다. 장평은 지금의 山西省 高平市 북서쪽에 있는 당시 조나라의 지명이다.

한비자집해(1) 책은 2019.10.25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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