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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非子集解(1)

한비자집해(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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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2 하야 公孫鞅奔秦하고 하고 하고
공숙좌公叔痤국기國器라고 추천하였다가 도리어 거절당하여 공손앙公孫鞅나라로 달아났고, 관룡봉關龍逢은 참수를 당하였고 장굉萇宏은 창자가 찢겨졌고
關龍逢(≪古聖賢像傳略≫)關龍逢(≪古聖賢像傳略≫)
碟裂也 勅氏反이라
구주舊注:〈‘’는〉 ‘설렬碟裂(찢다)’이라는 말이니 반절半切이다.
○先愼曰 趙本 無注六字 莊子胠篋篇釋文引司馬云 萇弘 周靈王賢臣也
왕선신王先愼조본趙本에는 구주舊注 여섯 자가 없다. ≪장자莊子≫ 〈거협편胠篋篇〉 ≪석문釋文≫에 이 글을 인용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사마표司馬彪는 ‘장홍萇弘나라 영왕靈王현신賢臣이다.’라고 하였다.
案周景王敬王之大夫 魯哀公三年六月 周人殺萇弘이라 一云刳腸曰胣라하니라 六微篇 以爲叔向之讒이라하니라
살펴보건대 나라 경왕景王경왕敬王의 대부이니 나라 애공哀公 3년 6월에 나라 사람이 장홍萇弘을 죽였다. 어떤 이는 ‘창자를 도려내는 것을 「」라고 한다.’라고 하였다.” ≪한비자韓非子≫ 〈육미편六微篇〉에는 “숙향叔向에게 참소를 당했다.”고 하였다.
역주
역주1 公叔痤言國器反爲悖 : 魏나라 재상 公叔座가 병이 위중하자 惠王이 병문안을 가서 그가 죽은 후의 대책을 물었더니 공숙좌가 대답하기를, “公孫鞅이 나이가 비록 젊으나 奇才가 있으니 왕께서 온 나라를 들어다 맡기소서.” 하니, 왕이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나가려 하였다. 이에 다시 “왕께서 공손앙을 등용하지 않으시겠다면 반드시 그를 죽여서 국경 밖으로 나가지 못하게 하소서.” 하였다. 그런 다음 공손앙을 불러다 “신하보다 임금을 우선시하는 마음에 너를 죽여야 한다고 하였으니 빨리 도망치거라.” 하니, 공손앙이 “왕이 나를 등용하라는 말을 듣지 않았으니 나를 죽이라는 말 또한 어찌 듣겠습니까.” 하고는 끝내 도망가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결국 秦나라 孝公을 섬겨 재상이 되었다. 관련 내용이 ≪史記≫ 권68 〈商君列傳〉에 보인다.
역주2 關龍逢斬 : 關龍逢은 夏나라 桀王 때의 충신으로, 걸왕이 술을 지나치게 마시는 잘못에 대해 간하다가 죽임을 당하였다.
역주3 萇宏分胣(치) : 萇宏은 萇弘으로도 표기한다. 周나라 敬王 때의 충신 장홍은 주나라의 대신 劉文公을 섬겼는데, 晉나라에서 范氏와 中行氏의 난이 일어나자 범씨와 대대로 혼인 관계를 가진 유문공을 도와 범씨를 지원하였다. 내란이 평정된 후 진나라의 趙鞅이 이 일을 구실 삼아 주나라 왕실이 범씨를 도왔다고 하여 토벌하려고 하자, 진나라의 도움으로 왕위에 올랐던 주나라 경왕은 부득이 장홍을 죽였다. 전설에 따르면 장홍이 죽은 뒤 3년이 되자 그 피가 푸른 벽옥으로 변하였다고 한다. 관련 내용이 ≪春秋左氏傳≫ 哀公 3년 조에 보인다.

한비자집해(1) 책은 2019.10.25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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