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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非子集解(4)

한비자집해(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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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57 治中山할새 令上計而入多하다
李(兌)[克]曰 語言辨이면 聽之說이나 不度於義 謂之窕言이요
苟且也
○顧廣圻曰 語言辨 句絶하고 讀爲悅이라
孫詒讓曰 云 李兌 合作李克이요 其治 已見外儲說左下
語言 下文 作言語
辨辯通이요 合作聰이라
魏都賦注 引李克書曰 言語辯聰之說이나 而不度於義者 謂之膠言注+① 文選注이라
案蒲阪圓據引李克書하야 校正此文하니 郅塙注+② 御覽一百六十一 引史記하야 亦以此爲李克事 今史記無此文이라 又案難諸篇 皆襍擧古書之文而難之 李克書 卽漢書藝文志儒家 李克七篇之佚文으로 劉逵所引未全하니 此可以補之이라 惟窕言膠言 義兩通注+③ 廣雅釋詁云 膠 欺也라하고 方言云 膠 詐也라하니 此李克書膠字之義하니 當各從本書
昭二十一年左傳云 小者不窕라하야늘 杜注云 窕 細不滿注+④ 呂氏春秋適音篇 高注義同이라이라하니
葢窕本爲空虛不充滿之言이니 引申之하야 凡虛假不實者 通謂之窕
窕言者 虛言不可信以爲實이요 下文窕貨者 虛貨不可恃以爲富也
舊注 釋爲苟且 葢讀爲佻愉字 於義未切이라
先愼曰 聽字不誤 選注作聰 形近而誤 玩下文自知


이극李克중산中山을 다스릴 적에 고경현령苦陘縣令이 연말의 회계보고를 올렸는데 수입이 많았다.
이극이 말하였다. “말을 교묘하게 잘하면 듣기에는 좋지만 도의道義를 따져서 한 말이 아니면 허무맹랑한 말이라 하고,
구주舊注:〈‘조언窕言’은〉 구차하다는 뜻이다.
고광기顧廣圻:‘어언변語言辨’에서 를 끊어야 하고, ‘’은 ‘’로 읽어야 한다.
손이양孫詒讓포판蒲阪(포판원蒲阪圓)은 “‘이태李兌’는 ‘이극李克’이 되어야 합당하고, 그가 중산中山을 다스린 일은 이미 〈외저설外儲說 좌하左下〉에 보인다.
언어語言’은 아래 글에 ‘언어言語’로 되어 있다.
’과 ‘’은 통용하고, ‘’은 ‘’이 되어야 합당하다.
문선文選≫ 〈위도부魏都賦〉의 이선李善 이극李克의 글을 인용하여 “언어변총지설言語辯聰之說 이불도어의자而不度於義者 위지교언謂之膠言(말을 교묘하고 총명하게 잘하지만 도의를 따지지 않고 하는 말을 교언膠言이라고 한다.注+〈‘魏都賦注’는〉 ≪文選≫의 李善 注이다.)”이라고 하였다.
살펴보건대 포판원蒲阪圓유규劉逵가 인용한 이극李克의 글에 의거하여 이 글을 교정하였으니 매우 확실하다.注+≪太平御覽≫ 권161에 ≪史記≫를 인용하면서 역시 이것을 李克의 일로 여겼으나 지금의 ≪史記≫에는 이 글이 없다. 또 살펴보건대 〈難〉의 여러 篇은 모두 옛 책의 글을 잡다하게 들어서 논란하였다. 李克의 글은 곧 ≪漢書≫ 〈藝文志〉 儒家類의 〈李克〉 七篇의 散逸된 글로써 劉逵의 인용문이 완전하지 않으니, 이 글로 보완할 수 있겠다. 다만 ‘조언窕言’과 ‘교언膠言’은 둘 다 뜻이 통하니,注+≪廣雅≫ 〈釋詁〉에 “‘膠’는 ‘欺(속임)’이다.”라고 하였고, ≪方言≫에 “‘膠’는 ‘詐(속임)’이다.”라고 하였으니, 이것이 李克이 ‘膠’자를 쓴 뜻이다. 각각 그 본서本書대로 따라야 한다.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소공昭公 21년에 “소자불조小者不窕(〈소리가〉 작은 것은 미세함)”라고 하였는데, 두예杜預에 “는 미세하여 차지 않는 것이다.注+≪呂氏春秋≫ 〈適音篇〉의 高誘 注와 뜻이 같다.[ 細不滿]”이라고 하였다.
대개 ‘’는 본디 텅 비어 가득 차지 않은 상태를 말하는 것이니, 전의轉義되어 거짓되어 진실하지 못한 것을 통틀어 ‘’라고 한다.
조언窕言’은 빈말이라 믿어 진실이라고 여길 수 없는 것이고, 아래 글의 ‘조화窕貨’는 헛된 재화財貨라 믿어서 재물이 많다고 여길 수 없는 것이다.
구주舊注에 ‘구차함이다’라고 해석한 것은 ‘조유佻愉(진중하지 못하고 구차함)’의 글자로 읽은 것이니, 뜻이 친절하지 못하다.
왕선신王先愼:‘’자는 잘못되지 않았다. ≪문선文選≫의 이선李善 에 ‘’으로 된 것은 자형字形이 비슷하여 잘못된 것이니, 아래 글을 읽어보면 저절로 알게 된다.


역주
역주1 蒲阪 : 일본 근대의 학자 蒲阪圓을 말한다. ≪韓非子≫를 연구하여 ≪增讀韓非子≫ 20권과 ≪定本韓非子纂聞≫ 20권을 지었다. ≪정본한비자찬문≫은 松臯圓의 著作이라고도 한다.
역주2 李(兌)[克] : 戰國時代 魏나라 사람으로 子夏의 제자이다. 魏 文侯가 中山國을 멸망시키고 太子 擊을 中山君으로 삼았을 때 中山相이 되었다. 문후가 재상을 선발하는 방법을 묻자, 그 사람이 평소 친근히 지내는 사람을 살펴보라는 등의 다섯 가지 재상 선발 德目을 제시하였다.
역주3 苦陘 : 戰國時代 趙나라가 두었던 縣 이름이다. 지금의 河北省 定州市 남동쪽에 있었다.
역주4 中山 : 春秋時代의 鮮虞國이고, 戰國時代의 中山國이다. 지금의 河北省 定州市와 平山縣 지역에 있었다.
역주5 劉逵 : 西晉 때의 文臣․學者이다. 字는 淵林이고, 黃門侍郞을 역임하였다. 博學多識하고 禮學에 精通하였다. 左思가 지은 〈三都賦〉에 대한 注를 지었는데, 정밀하고 정확하다는 평가를 받아 ≪文選≫의 〈三都賦〉 注에 편입되었다. 著書에 ≪喪服要記≫가 있다.

한비자집해(4) 책은 2022.12.25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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