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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非子集解(4)

한비자집해(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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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비자집해(4)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37-42 或曰 桓公之所應優 非君人者之言也 桓公以君人爲勞於索人이라하니 何索人爲勞哉
自(以)爲宰干湯하고 自(以)爲虜干하니
○兪樾曰 兩以字 皆衍文이라 由也 言由爲宰以干湯하고 由爲虜干穆公也
難一篇 故伊尹以中國爲亂으로 道爲宰干湯하고 百里奚以秦爲亂으로 道爲虜干穆公이라하니 亦由也 與此一律이라


혹자는 다음과 같이 논평論評하였다. “환공桓公이 광대에게 응답한 말은 군주 된 사람이 해서는 안 되는 말이다. 환공이 ‘군주 된 사람은 인재를 찾는 데에 수고롭다.’라고 하였는데, 어찌 인재를 찾는 일을 수고롭게 여기는가.
이윤伊尹은 요리사가 됨을 따라 상탕商湯에게 임용任用되기를 구하였고, 백리해百里奚는 노예가 됨을 따라 목공穆公에게 임용되기를 구하였으니,
유월兪樾:〈‘이윤자이위재간탕伊尹自以爲宰干湯 백리해자이위로간목공百里奚自以爲虜干穆公’의〉 두 ‘’자는 모두 연문衍文이다. ‘’는 ‘(따르다)’이니, 요리사가 됨을 따라 상탕商湯에게 임용되기를 구하였고, 노예가 됨을 따라 목공穆公에게 임용되기를 구했음을 말한 것이다.
한비자韓非子≫ 〈난일편難一篇〉에 ‘고이윤이중국위란故伊尹以中國爲亂 도위재간탕道爲宰干湯 백리해이진위란百里奚以秦爲亂 도위로간목공道爲虜干穆公(그러므로 이윤은 중국이 어지럽게 되었기 때문에 요리사가 됨을 따라 상탕에게 임용되기를 구하였고, 백리해는 진나라가 어지럽게 되었기 때문에 노예가 됨을 따라 목공에게 임용되기를 구하였다.)’이라고 하였으니, ‘’ 역시 ‘’이니 여기의 〈‘’와〉 동일한 형식이다.


역주
역주1 伊尹 : 殷나라 湯王을 도와 天子가 되도록 한 賢相이다. 이름은 摯이다. 처음 莘野에서 농사를 짓다가 탕왕이 세 번이나 초빙하자 出仕하였다. 탕왕은 그의 공을 높이 평가하여 阿衡이라 불러 존경하였다. 탕왕은 죽은 뒤 그의 뒤를 이은 손자 太甲이 不肖하므로 그를 桐宮에 안치하였다가 3년이 지나 태갑이 뉘우치자 다시 돌아오게 하였다.
역주2 百里奚 : 春秋時代 秦 穆公을 보좌하여 霸業을 이루게 한 名相이다. 字는 井伯이다. 일설에는 성은 百, 이름은 奚, 자는 里라고 한다. 본래 虞나라의 大夫였으나 虞君의 우매함을 보고 은퇴했다가 秦나라에 등용되었다. 일설에는 노예가 되어 있는 그를 목공이 羊 가죽 다섯 장으로 贖免하여 데리고 왔다 하여 ‘五羖大夫’라고 한다.
역주3 穆公 : 春秋時代 秦나라 君主이다. 姓은 嬴, 이름은 任好이다. 秦 德公의 작은 아들이다. 즉위 후 百里奚․蹇叔․由余 등의 賢臣을 중용하여 晉나라와의 전쟁에서 크게 승리하였고, 梁나라․芮나라․滑나라 등을 겸병하여 국력을 크게 떨쳤다. 春秋五霸 중의 한 사람으로 일컬어진다.

한비자집해(4) 책은 2022.12.25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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