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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非子集解(2)

한비자집해(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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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今制於爲虛 是不虛也니라 虛者之無爲也 不以無爲爲有常이니
不以無爲爲有常이면 則虛하면 則德盛이니 德盛之謂上德이라 故曰 上德 無爲而無不爲也라하니라
○先愼曰 德經 不作以 不作非 無無字 各本無末也字
按此篇及喩老每條末也字矣字 多非老子文이라


지금 허정한 상태가 되려는 마음에 속박되면 이는 허정한 상태가 되지 못한 것이다. 허정한 상태가 된 자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으로 항상 마음에 담아두지 않는 것이니,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으로 항상 마음에 담아두지 않으면 허정해지고, 허정해지면 덕이 충만해진다. 덕이 충만해지는 것을 ‘최상의 덕[上德]’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老子≫에서 “최상의 덕은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도 하지 않는 것이 없다.”라고 한 것이다.
王先愼:≪德經≫의 河上公本王弼本은 ‘’이 ‘’로 되어 있고, 葉夢得은 ‘’을 ‘’로 썼으며, 傅奕本은 ‘’자가 없고, 각 본에 끝의 ‘’자는 없다.
살펴보건대 이 편과 〈喩老篇〉의 매 조문의 끝에 있는 ‘’자와 ‘’자는 대부분 ≪老子≫의 글이 아니다.


역주
역주1 河上公 : 前漢 때의 道士로 성명은 미상이다. 文帝 때 河濱에 초가집을 짓고 살아 사람들이 河上公이라 불렀다고 한다. ≪老子≫를 주해하였다고 전하는데, ≪老子道德經河上公章句≫ 또는 ≪老子道德經河上注≫라는 서명으로 세상에 전한다.
역주2 王弼 : 226∼249. 魏나라 학자로 자는 輔嗣이다. 재능이 있어서 일찍 학계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何晏과 함께 魏晉 시대 老莊學의 시조로 일컬어진다. 漢나라의 象數나 讖緯說을 배격하고 義理의 분석적이고 사변적인 학풍을 창설하였다고 평가된다. ≪老子註≫와 ≪周易註≫를 남겼는데, 六朝時代와 隋唐에서 성행하였다.
역주3 葉夢得 : 1077~1148. 南宋 때의 학자로 자는 少蘊, 호는 石林居士이다. 晁補之, 張耒에게 수학하였고, 紹聖 4년(1097) 進士에 급제하여 中書舍人, 翰林學士, 龍圖閣直學士, 杭州知州事 등을 지냈다. 박학다식하고 시에 능하였다. ≪老子≫를 주석한 ≪老子解≫가 있다.
역주4 傅奕 : 555~639. 隋末唐初의 道士로, 불교를 비판하고 老子를 특히 존숭하였다. 저서로 ≪老子注≫, ≪老子音義≫, ≪高識傳≫ 등이 있다. 傅奕本은 ≪老子≫의 王弼本과 河上公本을 비롯한 몇 가지 다른 판본을 비교하여 審定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비자집해(2) 책은 2021.01.12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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