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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非子集解(1)

한비자집해(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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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非 處弱韓危極之時하야 以宗屬疏遠으로 不得進用이라
한비韓非는 약소국인 나라의 지극히 위태로운 시대를 살면서 한나라의 종실 가운데 소원한 처지였으므로 등용되지 못하였다.
目擊游說縱橫之徒 顛倒人主以取利하고 而奸猾賊民 恣為暴亂호되 莫可救止
유세하고 합종연횡合從連橫의 계책을 펼치는 무리들이 군주의 권세를 엎어뜨려 이익을 취하고, 간사하고 교활한 적민賊民이 제멋대로 난폭한 짓을 자행하는데도 저지할 방도가 없는 것을 목격하였다.
因痛嫉夫操國柄者 不能伸其自有之權力하야 斬割禁斷하야 肅朝野而謀治安이라
그리하여 나라의 권병權柄을 잡은 자(군주)가 자기가 가진 권력을 발휘하여 이들을 잘라내고 금지하여 조야朝野를 깨끗하게 바로잡고 편안한 다스림을 도모하지 못하는 것을 통렬하게 미워하였다.
其身與國為體하고 又燭弊深切이나 無繇見之行事하야 為書以著明之 故其情迫하고 其言覈하야 不與戰國文學諸子等이라
자신을 나라와 한 몸으로 여기고 또 폐단을 꿰뚫어보는 것이 깊고 절실하였으나 실행에 옮길 길이 없어서 글로 써서 드러내 밝혔다. 그러므로 그 마음이 절박하고 말이 확실하여 전국시대 제자백가와 같지 않았다.
迄今覽其遺文하고 推跡當日國勢하건대 苟不先以非之言이면 殆亦無可爲治者
지금에 와서 그가 남긴 글을 읽고 당시의 국세를 미루어 살펴보건대, 진실로 한비韓非가 주장한 말을 우선으로 하지 않으면 아마도 나라를 잘 다스릴 만한 방법이 없을 것이다.
仁惠者 臨民之要道 然非以待奸暴也 孟子導時王以仁義하야 而惡言利
인혜仁惠는 백성을 다스리는 중요한 방도이지만 간사하고 포악한 자를 다스리는 수단은 아니다. 맹자孟子가 당시 왕들을 인의仁義로 인도하면서 는 말하기 싫어하였다.
그러나 지금 한비韓非의 말에는 “세상의 학자들이 군주에게 유세할 때, 위엄 있는 권세를 이용하여 간사한 신하를 억누르라고 하지 않고 모두 인과 의, 은혜와 사랑을 말하니, 세상의 군주들도 인의라는 그럴듯한 명분만 아름답게 여기고 실질은 살피지 못한다.”라고 하였다.
蓋世主所美 非孟子所謂仁義 說士所言 非仁義即利耳
세상의 군주가 아름답게 여기는 것은 맹자가 말한 인의가 아니고, 유세하는 선비가 말하는 것은 인의仁義를 비난하고 를 추구할 뿐이다.
至勸人主用威하야는 唯非宗屬乃敢言之
군주에게 위세를 이용하라고 권유한 데에는 오직 한비韓非가 종실의 일원이기에 감히 말한 것이다.
非論說固有偏激이나 然其云 하며
한비의 논설이 본래 치우치고 과격한 점이 있지만, 그가 말하기를 “법을 밝히고 형벌을 엄하게 하여 백성들의 혼란을 구제하고 천하의 화란을 제거하며,
使強不陵弱하고 眾不暴寡하며 耆老得遂하고 幼孤得長이라하니
강자가 약자를 능멸하지 못하게 하고 다수가 소수를 해치지 못하게 하며, 노인은 수명을 다 누리게 하고 어린 고아도 잘 자라게 해야 한다.”라고 하였다.
此則重典之用而張弛之宜 으로 用意豈異也리오
이는 엄중한 형전刑典을 시행하되 적절하게 긴장시키고 풀어주는 방도이니, 맹자孟子가 말한 ‘한가한 때에 미쳐 형정刑政을 밝힌다.’고 한 것과 비교하면 용의用意가 어찌 다르겠는가.
既不能行之于韓이로되 而秦法闇與之同하야 遂以鉏群雄하고 有天下 而董子迺曰 이라하니라
이미 나라에서 실행되지 못했지만, 나라의 법이 암암리에 한비韓非의 학설과 합치되어 마침내 〈진나라가〉 군웅群雄을 척결하고 천하를 소유하였다. 그래서 동자董子(동중서董仲舒)는 이르기를 “진나라가 한비의 학설을 실행하였다.”라고 하였다.
攷非奉使時 秦政立하야 勢成이요 非往即見殺이어늘 何謂行其說哉리오
그러나 상고하건대, 한비가 진나라에 사신을 갔을 때 진왕 정秦王 政(진 시황秦 始皇)이 즉위하여 〈천하를 소유할〉 형세가 완성되었고, 한비는 진나라에 들어가자마자 죽임을 당하였는데, 어떻게 그의 학설을 실행했다고 하겠는가.
書都二十卷 舊注罕所揮發이라 從弟先慎 為之集解하야 訂補闕譌하고 推究義蘊하니 然後是書釐然可誦이라
한비자韓非子≫는 책이 모두 20권인데 구주舊注는 뜻을 드러내어 밝힌 것이 적다. 때문에 종제 왕선신王先愼이 ≪한비자집해韓非子集解≫를 지어 빠진 것을 보완하고 잘못된 것을 바로잡으며 함축된 뜻을 추구推究한 뒤에 이 책이 명료해져 읽을 만하게 되었다.
主道以下 蓋非平日所為書 初見秦諸篇 則後來附入者
주도主道〉 이하는 한비가 평소 지은 글이고, 〈초견진初見秦〉 등 여러 편은 뒤에 첨부되어 들어간 것이다.
非勸秦不舉韓하야 為宗社圖存하니 畫至無俚 君子于此 尤悲其志焉하니라
한비가 진나라에게 한나라로 출병하지 않도록 권유하여 종묘사직을 보존하고자 도모하였으니, 계획이 너무나도 터무니없었다. 군자들이 이 점에 대해 더욱 그 뜻을 슬퍼하였다.
光緒二十二年冬十二月 葵園老人王先謙하노라
광서光緖 22년(1896) 겨울 12월에 규원로인 왕선겸葵園老人 王先謙은 서문을 쓰다.
역주
역주1 世之學術者說人主……不察其實 : ≪韓非子≫ 〈姦劫弑臣〉에 나오는데, 약간의 글자 출입이 있다.
역주2 明法嚴刑……幼孤得長 : ≪韓非子≫ 〈姦劫弑臣〉에 나오는데, 약간의 글자 출입이 있다.
역주3 與孟子所稱及閒暇明政刑 : ≪孟子≫ 〈公孫丑 上〉에 “賢者가 지위에 있으며, 재능이 있는 자가 직책에 있어서 국가가 한가하거든, 이때에 미쳐 그 정사와 형벌을 밝힌다면, 비록 강대국이라도 반드시 그를 두려워할 것이다.[賢者在位 能者在職 國家閒暇 及是時 明其政刑 雖大國 必畏之矣]”라는 말이 있다.
역주4 秦行韓非之說 : ≪漢書≫ 〈董仲舒傳〉에 “〈秦나라는〉 申不害와 商鞅의 법을 본받고 韓非의 학설을 실행하며 帝王의 도를 증오하여, 탐욕스럽고 흉포한 짓으로 풍속을 삼아, 文德으로 천하를 교화하는 일은 없었다.[師申商之法 行韓非之說 憎帝王之道 以貪狼為俗 非有文德以教訓於天下也]”라고 하였다.

한비자집해(1) 책은 2019.10.25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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