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荀子集解(1)

순자집해(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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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자집해(1)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1-5 之子 生而同聲이나 長而異俗하니 使之然也니라
干越 猶言吳越이라
呂氏春秋荊有次非得寶劍於干越이라하고 高誘曰 吳邑也라하니라
東北夷
同聲 謂啼聲同이라
莫革反이라
○ 謝刻 從盧校하여 干作于 注文作于越猶言於越이라
盧文弨曰 于越 宋本作干越이나
今從元刻하니 與大戴禮同이라
注於越 舊作吳越訛
所引呂氏春秋 見知分篇이라
次非 俗本作佽飛하고 唯宋本與呂氏同이라
呂氏于越作干遂하니 淮南同하고 注干音寒이라하며
國策作干隧
然楊氏自作于越이라 故以於越爲釋하니라
劉台拱曰 淮南原道訓 干越生葛絺라하고 高注 吳也라하니 楊氏此注 以干越爲吳越 蓋用高義
觀下文引呂氏春秋注可見이라
盧改非也
今原道訓作于越하니 亦妄庸人所改
王念孫曰 劉說是也
宋刻呂夏卿本錢佃本 竝作干越이라
干越夷貉四者 皆國名이니 不得改干越爲于越이라
古書言干越者多矣
凡改干越爲于越者 皆所謂知其一說하고 不知又有一說者也니라
大戴記之于越 亦後人所改 辯見漢書貨殖傳이라
皆作干이로되 它本皆改爲于
俞樾曰 案盧刻誠非하고 而楊注原文謂猶言吳越 亦恐不然이라
干與越竝言하니 則干亦國名이라
管子内業篇 昔者吳干戰할새 未齓不得入軍門하니 國子擿其齒遂入하여 爲干國多라하니
則干與吳且爲敵國이요 非即吳明矣
尹知章注管子 以干爲江邊地하니 非是
辯見管子
字本作邗하니
說文邑部 國也
今屬臨淮
一曰 邗本屬吳라하니 蓋邗古國名이요 後爲吳邑이라
哀九年左傳 吳城邗이라하니 是也
古書言干越者 則當從國名之本訓이요 不得因其後爲吳邑이라하여 而即訓爲吳也
先謙案 王氏雜志引文選江賦注所引墨子 以利荊楚干越 吳都賦包括干越 莊子刻意篇干越之劍及淮南原道訓하여
以證漢書貨殖傳之于越 當爲干越이라하니 其義允矣
今案 鹽鐵論殊路篇 干越之鋌不厲 匹夫賤之라하니 亦一證也
吳干先爲敵國이라가 後干併於吳 管子吳干戰 及左傳吳城邗 即其明證이라
干爲吳滅하여 而吳一稱干하니 猶鄭爲韓滅하여 而韓亦稱鄭이라注+竹書紀年 書韓哀侯作鄭哀侯
俞氏所駁 亦非也
今依劉王說하여 改從宋本이라


나라‧나라‧이족夷族맥족貉族의 아이들이 처음 태어났을 때 울음소리는 서로 같지만 장성한 뒤에는 〈언어와〉 풍속이 다르니, 이는 배워 익힌 것에 따라 그렇게 된 것이다.
양경주楊倞注 : 간월干越이라 말한 것과 같다.
은 동북방 오랑캐이다.
동성同聲’은 우는 소리가 같다는 것을 말한다.
의 음은 반절反切이다.
사각본謝刻本에는 노교본盧校本을 따라 ‘’이 ‘’로 되어 있고, 양경楊倞 의 글도 ‘우월유언어월于越猶言於越’로 되어 있다.
노문초盧文弨 : ‘우월于越’이 송본宋本에는 ‘간월干越’로 되어 있다.
여기서는 원각본元刻本을 따랐는데 《대대례기大戴禮記》에도 원각본元刻本과 같다.
양경楊倞 의 ‘어월於越’이 옛 판본에는 ‘오월吳越’로 되어 있는데 이는 잘못된 것이다.
양경楊倞 에서 인용한 《여씨춘추呂氏春秋》의 내용은 〈지분편知分篇〉에 보인다.
차비次非가 통행본에는 ‘차비佽飛’로 되어 있고 오직 송본宋本과 《여씨춘추呂氏春秋》에서만 같다.
여씨춘추呂氏春秋》에는 ‘우월于越’이 ‘간수干遂’로 되어 있으며, 《회남자淮南子》에도 그와 같고 의 음은 ‘’이라는 주를 달았다.
전국책戰國策》에는 ‘간수干隧’로 되어 있다.
그러나 양씨楊氏가 스스로 ‘우월于越’이라 했기 때문에 ‘어월於越’로 풀이한다.
유태공劉台拱 : 《회남자淮南子》 〈원도훈原道訓〉에 “ 지방에서 올이 가는 갈포가 생산된다.” 하고 고유高誘의 주에 “이다.”라고 하였으니, 양씨楊氏의 이 주에 ‘간월干越’을 ‘오월吳越’이라 한 것은 고유高誘의 뜻을 따라서였을 것이다.
아래 문구에서 《여씨춘추呂氏春秋》의 주를 인용한 것을 보면 그랬을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니 노씨盧氏가 이것을 고친 것은 잘못이다.
지금 〈원도훈原道訓〉에 ‘우월于越’로 되어 있는 것도 경망한 사람이 함부로 고친 것일 것이다.
왕염손王念孫 : 유씨劉氏의 설이 옳다.
나라 때 각본인 전본錢本에는 모두 ‘간월干越’로 되어 있다.
넷은 다 나라이름이니 ‘간월干越’을 ‘우월于越’로 고칠 수 없다.
옛 문헌에 ‘간월干越’이라고 말한 경우가 많다.
간월干越’을 ‘우월于越’로 고친 사람은 모두 이른바 ‘하나의 설만 알고 그 이외에 다른 설이 있다는 것을 모른다.’는 사람이다.
대대례기大戴禮記》의 ‘우월于越’ 또한 뒷사람이 고친 것이니, 이에 대한 설명은 《한서漢書》 〈화식전貨殖傳〉에 보인다.
도장본道藏本회남자淮南子》와 주동광朱東光의 판본도 모두 ‘’으로 되어 있지만 다른 판본은 모두 ‘’로 고쳐져 있다.
유월俞樾 : 살펴보건대, 노씨盧氏 각본은 사실 잘못되었고 양경楊倞 원문에 ‘유언오월猶言吳越’이라 한 것도 그렇지 않은 것 같다.
’과 ‘’을 나란히 말했으니 ‘’ 또한 나라이름이다.
관자管子》 〈내업편内業篇〉에 “옛날 나라와 나라가 전쟁을 치를 적에 〈나라의 규정에〉 젖니가 빠지지 않은 소년은 진영에 들어갈 수 없다고 되어 있었으므로 나라의 소년들이 이빨을 흔들어 뽑아버리고 진영으로 들어가 나라를 위해 많은 전공을 세웠다.”라고 하였다.
이로 볼 때 나라와 나라는 본디 서로 적국이고 나라가 곧 나라는 아니라는 것이 분명하다.
〈그런데도〉 윤지장尹知章이 《관자管子》에 주를 붙이면서 ‘’을 강변 땅이라고 하였으니, 이는 옳지 않다.
이에 관한 설명이 《관자管子》에 보인다.
’자는 본디 ‘’으로 되어 있다.
설문해자說文解字읍부邑部에 “은 나라이다.
지금 임회臨淮에 속한다.
형부形符가 되고 성부聲符가 된다.
혹자는 ‘은 본디 나라에 속한다.’고 했다.”라고 하였으니, 대체로 은 옛 나라이름이었고 뒤에 나라 고을이 되었을 것이다.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애공哀公 9년에 “나라가 에 성을 쌓았다.”라고 한 것이 그 증거이다.
옛 문헌에서 간월干越이라고 말한 곳은 당연히 나라이름인 기본적인 뜻을 따라야지 나중에 나라 고을이 되었다 하여 아예 나라라는 뜻으로 이해하면 안 될 것이다.
선겸안先謙案 : 왕씨王氏의 《독서잡지讀書雜志》에, 《문선文選》 〈강부江賦〉 주에서 인용한 《묵자墨子》의 ‘을 이롭게 한다.’와 〈오도부吳都賦〉의 ‘을 포괄하였다.’와 《장자莊子》 〈각의편刻意篇〉의 ‘의 검’ 및 《회남자淮南子》 〈원도훈原道訓〉의 내용을 인용하여
한서漢書》 〈화식전貨殖傳〉의 ‘우월于越’은 마땅히 ‘간월干越’이 되어야 한다고 했으니, 그 뜻이 옳다.
지금 내가 살펴보건대 《염철론鹽鐵論》 〈수로편殊路篇〉에 ‘의 도검이라도 가공하지 않으면 필부도 그것을 하찮게 여긴다.’ 하였으니, 이 또한 하나의 증거가 된다.
나라와 나라가 처음에는 적국이었다가 뒤에 나라가 나라에 합병되었다는 것은 《관자管子》의 ‘이 전쟁을 했다.’는 내용과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의 ‘나라가 에 성을 쌓았다.’는 내용이 곧 확실한 증거이다.
나라가 나라에 의해 멸망당했으므로 나라를 간혹 ‘’이라 칭하기도 하니, 이는 나라가 나라에게 멸망당했다 하여 나라 또한 나라로 부르는 경우와 같다.注+죽서기년竹書紀年》에 애후哀侯 애후哀侯라고 표기하였다.
유씨俞氏가 논박한 것도 틀렸다.
여기서는 유씨劉氏왕씨王氏의 설에 의해 〈‘’를 ‘’으로〉 고쳐 송본宋本대로 따랐다.


역주
역주1 干越夷貉 : ‘干’자에 대해 王先謙은 춘추시대 吳나라에 의해 멸망당해 吳나라 고을로 귀속된 나라인 ‘邗’의 다른 표기라 하여 吳나라를 가리킨다 하였고, 物雙松‧冢田虎‧久保愛‧王天海 등은 《通雅》‧《呂覽》‧《漢書》에서의 사례 및 《春秋》 定公 5년의 經文에 “于越雜俗”이라고 한 것과 杜預의 주에 “於는 發聲이다.”라고 한 사례를 근거로 들어 ‘于’를 잘못 표기한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번역에서는 전자의 설을 따랐다. 越은 ‘粵’로 표기하기도 하며 吳의 이웃나라이다. 처음 봉해진 군주는 夏나라 少康의 서자 無餘이고 도읍지는 지금의 浙江 紹興이다. B.C. 306년 楚나라에 의해 멸망당했다. 夷는 동방의 소수민족이고 貉은 동북방의 소수민족이다. 貉은 ‘貊’과 같다.
역주2 : 《說文解字》에 “敎는 위에서 베풀고 밑에서 본받는다는 뜻이다.[上所施下所效也]”라고 하였다. 〈勸學篇〉의 취지가 가르치는 것보다 배우는 것을 위주로 한 것이고, 敎는 ‘斅’와 통용하고 ‘斅’는 ‘效’의 의미를 지니고 있으므로 본받고 배운다는 뜻으로 번역하였다.
역주3 淮南道藏本及朱東光本 : 淮南道藏本은 道藏本에 수용된 《淮南子》를 말한 것으로 보인다. 道藏本은 六朝 때 수합한 道家 經傳의 총집으로 1,476종, 5,485권이다. 宋 徽宗 때 《萬壽道藏》이란 이름으로 간행되었고 明나라 때 정본은 《正統道藏》, 속본은 《萬曆續道藏》이란 이름으로 간행되었다. 朱東光은 明나라 福建 浦城 사람으로 자는 元曦, 호는 存敬이다. 戶科給事中을 지냈고 《中都四子集》을 편찬하였다.
역주4 從邑干聲 : 從과 聲은 《說文解字》에서 어떤 글자에 대해 그 글자가 이루어진 성분과 그 음을 설명할 때 사용하는 형식이다. 從은 어떤 모양이나 뜻을 지닌 글자가 함께 붙어 있는 것으로 ‘形符’ 또는 ‘意符’를 뜻하고, 聲은 소리로 읽을 때의 음이란 뜻으로 聲符를 말한다.
역주5 《呂氏春秋》에……하였다 : 지금 통행하는 《呂氏春秋》에는 ‘荆有次非者 得寳劍于干遂’로 되어 있고, 高誘 주는 ‘干遂吳邑’으로 되어 있어 楊倞이 인용한 것과는 약간 다르다. 그런데 《太平御覽》 권930에 인용된 《呂氏春秋》의 이 부분은 ‘荆有佽飛者 得寶劍於干將 遂還 及涉江’으로 되어 있다. 이는 ‘楚나라에 佽飛라는 사람이 있는데 干將으로부터 보검을 얻고 마침내 돌아오다가 강물을 건너게 되었다.’라는 뜻으로, 《呂氏春秋》의 이 문구는 재고의 여지가 많다.

순자집해(1) 책은 2024.01.0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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