注
呂氏春秋荊有次非得寶劍於干越이라하고 高誘曰 吳邑也라하니라
○ 謝刻은 從盧校하여 干作于라 注文作于越猶言於越이라
劉台拱曰 淮南原道訓에 干越生葛絺라하고 高注에 干은 吳也라하니 楊氏此注에 以干越爲吳越은 蓋用高義라
凡改干越爲于越者는 皆所謂知其一說하고 不知又有一說者也니라
俞樾曰 案盧刻誠非하고 而楊注原文謂猶言吳越도 亦恐不然이라
管子内業篇에 昔者吳干戰할새 未齓不得入軍門하니 國子擿其齒遂入하여 爲干國多라하니
一曰 邗本屬吳라하니 蓋邗古國名이요 後爲吳邑이라
古書言干越者는 則當從國名之本訓이요 不得因其後爲吳邑이라하여 而即訓爲吳也라
先謙案 王氏雜志引文選江賦注所引墨子에 以利荊楚干越과 吳都賦包括干越과 莊子刻意篇干越之劍及淮南原道訓하여
以證漢書貨殖傳之于越은 當爲干越이라하니 其義允矣라
今案 鹽鐵論殊路篇에 干越之鋌不厲면 匹夫賤之라하니 亦一證也라
吳干先爲敵國이라가 後干併於吳는 管子吳干戰과 及左傳吳城邗이 即其明證이라
干爲吳滅
하여 而吳一稱干
하니 猶鄭爲韓滅
하여 而韓亦稱鄭
이라注+竹書紀年에 書韓哀侯作鄭哀侯라
注
양경주楊倞注 : 간월干越은 오吳‧월越이라 말한 것과 같다.
‘동성同聲’은 우는 소리가 같다는 것을 말한다.
○ 사각본謝刻本에는 노교본盧校本을 따라 ‘간干’이 ‘우于’로 되어 있고, 양경楊倞 주注의 글도 ‘우월유언어월于越猶言於越’로 되어 있다.
노문초盧文弨 : ‘우월于越’이 송본宋本에는 ‘간월干越’로 되어 있다.
여기서는 원각본元刻本을 따랐는데 《대대례기大戴禮記》에도 원각본元刻本과 같다.
양경楊倞 주注의 ‘어월於越’이 옛 판본에는 ‘오월吳越’로 되어 있는데 이는 잘못된 것이다.
양경楊倞 주注에서 인용한 《여씨춘추呂氏春秋》의 내용은 〈지분편知分篇〉에 보인다.
차비次非가 통행본에는 ‘차비佽飛’로 되어 있고 오직 송본宋本과 《여씨춘추呂氏春秋》에서만 같다.
《여씨춘추呂氏春秋》에는 ‘우월于越’이 ‘간수干遂’로 되어 있으며, 《회남자淮南子》에도 그와 같고 간干의 음은 ‘한寒’이라는 주를 달았다.
《전국책戰國策》에는 ‘간수干隧’로 되어 있다.
그러나 양씨楊氏가 스스로 ‘우월于越’이라 했기 때문에 ‘어월於越’로 풀이한다.
유태공劉台拱 : 《회남자淮南子》 〈원도훈原道訓〉에 “간干과 월越 지방에서 올이 가는 갈포가 생산된다.” 하고 고유高誘의 주에 “간干은 오吳이다.”라고 하였으니, 양씨楊氏의 이 주에 ‘간월干越’을 ‘오월吳越’이라 한 것은 고유高誘의 뜻을 따라서였을 것이다.
아래 문구에서 《여씨춘추呂氏春秋》의 주를 인용한 것을 보면 그랬을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니 노씨盧氏가 이것을 고친 것은 잘못이다.
지금 〈원도훈原道訓〉에 ‘우월于越’로 되어 있는 것도 경망한 사람이 함부로 고친 것일 것이다.
송宋나라 때 각본인 여呂‧전본錢本에는 모두 ‘간월干越’로 되어 있다.
간干‧월越‧이夷‧맥貉 넷은 다 나라이름이니 ‘간월干越’을 ‘우월于越’로 고칠 수 없다.
옛 문헌에 ‘간월干越’이라고 말한 경우가 많다.
‘간월干越’을 ‘우월于越’로 고친 사람은 모두 이른바 ‘하나의 설만 알고 그 이외에 다른 설이 있다는 것을 모른다.’는 사람이다.
《대대례기大戴禮記》의 ‘우월于越’ 또한 뒷사람이 고친 것이니, 이에 대한 설명은 《한서漢書》 〈화식전貨殖傳〉에 보인다.
도장본道藏本 《회남자淮南子》와 주동광朱東光의 판본도 모두 ‘간干’으로 되어 있지만 다른 판본은 모두 ‘우于’로 고쳐져 있다.
유월俞樾 : 살펴보건대, 노씨盧氏 각본은 사실 잘못되었고 양경楊倞 주注 원문에 ‘유언오월猶言吳越’이라 한 것도 그렇지 않은 것 같다.
‘간干’과 ‘월越’을 나란히 말했으니 ‘간干’ 또한 나라이름이다.
《관자管子》 〈내업편内業篇〉에 “옛날 오吳나라와 간干나라가 전쟁을 치를 적에 〈간干나라의 규정에〉 젖니가 빠지지 않은 소년은 진영에 들어갈 수 없다고 되어 있었으므로 간干나라의 소년들이 이빨을 흔들어 뽑아버리고 진영으로 들어가 간干나라를 위해 많은 전공을 세웠다.”라고 하였다.
이로 볼 때 간干나라와 오吳나라는 본디 서로 적국이고 간干나라가 곧 오吳나라는 아니라는 것이 분명하다.
〈그런데도〉 윤지장尹知章이 《관자管子》에 주를 붙이면서 ‘간干’을 강변 땅이라고 하였으니, 이는 옳지 않다.
《설문해자說文解字》 읍부邑部에 “한邗은 나라이다.
읍邑은 형부形符가 되고 간干은 성부聲符가 된다.
혹자는 ‘한邗은 본디 오吳나라에 속한다.’고 했다.”라고 하였으니, 대체로 한邗은 옛 나라이름이었고 뒤에 오吳나라 고을이 되었을 것이다.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 애공哀公 9년에 “오吳나라가 한邗에 성을 쌓았다.”라고 한 것이 그 증거이다.
옛 문헌에서 간월干越이라고 말한 곳은 당연히 나라이름인 기본적인 뜻을 따라야지 나중에 오吳나라 고을이 되었다 하여 아예 오吳나라라는 뜻으로 이해하면 안 될 것이다.
선겸안先謙案 : 왕씨王氏의 《독서잡지讀書雜志》에, 《문선文選》 〈강부江賦〉 주에서 인용한 《묵자墨子》의 ‘형荊‧초楚‧간干‧월越을 이롭게 한다.’와 〈오도부吳都賦〉의 ‘간干‧월越을 포괄하였다.’와 《장자莊子》 〈각의편刻意篇〉의 ‘간干‧월越의 검’ 및 《회남자淮南子》 〈원도훈原道訓〉의 내용을 인용하여
《한서漢書》 〈화식전貨殖傳〉의 ‘우월于越’은 마땅히 ‘간월干越’이 되어야 한다고 했으니, 그 뜻이 옳다.
지금 내가 살펴보건대 《염철론鹽鐵論》 〈수로편殊路篇〉에 ‘간干‧월越의 도검이라도 가공하지 않으면 필부도 그것을 하찮게 여긴다.’ 하였으니, 이 또한 하나의 증거가 된다.
오吳나라와 간干나라가 처음에는 적국이었다가 뒤에 간干나라가 오吳나라에 합병되었다는 것은 《관자管子》의 ‘오吳와 간干이 전쟁을 했다.’는 내용과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의 ‘오吳나라가 한邗에 성을 쌓았다.’는 내용이 곧 확실한 증거이다.
간干나라가
오吳나라에 의해 멸망당했으므로
오吳나라를 간혹 ‘
간干’이라 칭하기도 하니, 이는
정鄭나라가
한韓나라에게 멸망당했다 하여
한韓나라 또한
정鄭나라로 부르는 경우와 같다.
注+《죽서기년竹書紀年》에 한韓 애후哀侯를 정鄭 애후哀侯라고 표기하였다.
여기서는 유씨劉氏와 왕씨王氏의 설에 의해 〈‘우于’를 ‘간干’으로〉 고쳐 송본宋本대로 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