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荀子集解(4)

순자집해(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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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자집해(4)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16-82 今楚 父死焉하고 擧焉하니 하여하여
此楚頃襄王之時也 謂懷王이니 爲秦所虜而死也
至二十一年하여 秦將白起遂拔我鄢郢하고 燒先王墓於하니
襄王兵散하여 遂不復戰하고 東北保陳城이라 主也 謂自屛遠也 或曰 讀爲避라하니라


지금 나라 〈경양왕頃襄王은〉 그의 아버지가 죽고 도성이 점령당하자, 세 왕의 사당을 등지고 떠나 지방에 피신해 있으면서
양경주楊倞注:이것은 나라 경양왕頃襄王 때의 일이다. 회왕懷王을 말하니, 나라에 사로잡혀 죽었다.
경양왕頃襄王 21년에 이르러 나라 장수 백기白起가 마침내 나라 도성 을 점령하고 이릉夷陵에서 선왕先王의 무덤을 불태우자,
경양왕頃襄王의 군대가 흩어져 결국 더 이상 싸우지 않고 〈도읍을〉 동북방의 陳城으로 옮겨 지켰다. 는 신주이다. 은 본음대로 읽으니, 스스로 멀리 떠나 있는 것을 이른다. 혹자는 “로 읽어야 한다.”라고 하였다.


역주
역주1 : 여기서는 도성의 뜻이다.
역주2 負三王之廟 : 三王은 楚나라 宣王‧威王‧懷王을 가리키고 廟는 사당이다. 곧 세 왕의 사당을 등지고 떠났다는 뜻이다. 楊倞은 廟의 뜻을 신주라고 풀이하였는데, 이럴 경우 세 왕의 신주를 등에 짊어진다는 뜻이다. 王天海는 負를 위배하다는 뜻인 ‘背離’라 하고 廟를 사당이라고 하였다. 王天海의 설에 따라 번역하였다.
역주3 辟(피)於陳蔡之閒 : 辟는 ‘避’와 같다. 陳은 지금의 河南省 淮陽과 安徽省 亳縣 일대에 위치했던 제후국인데, B.C.479년에 楚나라에 의해 멸망되어 陳城이 되었고, 蔡는 지금의 安徽省 鳳臺에 위치했던 下蔡인데, B.C.447년에 楚나라에 의해 멸망되어 楚나라 땅이 되었다. 楚 頃襄王 21년(B.C.278)에 秦나라 大良造 白起가 楚나라를 공격하여 도성 郢을 함락시키자, 뒤로 물러나 陳城을 지켰다.
역주4 夷陵 : 楚나라 고을이름이다. 지금의 湖北省 宜昌市 동남 長江의 북쪽 연안이다.
역주5 辟 如字 : 如字는 주음 방법의 하나로, 한 글자에 두 가지 이상의 발음이 있을 때 가장 통상적인 발음으로 읽는 것을 말한다. 辟은 ‘벽’, ‘피’, ‘비’ 등 세 발음이 있고 발음에 따라 뜻도 다른데, 이 중에 통상적인 발음은 ‘벽’이고 이때의 대표적인 뜻은 ‘물리치다’이다.

순자집해(4) 책은 2022.08.31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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