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荀子集解(7)

순자집해(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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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자집해(7)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32-47 昔虞不用宮之奇而晉并之하고 萊不用子馬而齊并之하며
宮之奇 虞賢臣이라 諫不從하여 以其族行이라 子馬 未詳其姓名이라
左氏傳曰 襄二年 齊侯伐萊하니 萊人使正輿子賂夙沙衞하되 以索馬牛皆百匹이라하고
又六年 齊侯伐萊하니 萊人使王湫帥師及正輿子軍齊師어늘 齊師大敗之하고 遂滅萊라하니라
或曰 正輿子字子馬 其不用未聞이라하니라 說苑 諸御己諫楚莊王曰 曹不用僖負羈而宋并之하고 萊不用子猛而齊并之라하니라
據年代하면 齊滅萊在楚莊王後하니 未詳諸御己之諫也
○ 盧文弨曰 諸御己 舊本譌作諸卿己 今據說苑正諫篇改正이라
郝懿行曰 說苑正諫篇子馬作子猛이라 이니 疑即一人이나 而據說苑하면 此人年代在前하니 楊注云云 是也
或說以左傳閔子馬하면 閔子馬即閔馬父 하니 豈萊不用而去之魯邪
然此子馬見昭十八年傳하니 上距襄六年齊人滅萊之歲四十餘年矣 世代在後差遠하고 又非萊人이니 無庸牽合이라


옛날에 나라는 궁지기宮之奇를 임용하지 않아 나라가 병탄并呑하고, 나라는 자마子馬를 임용하지 않아 나라가 병탄하였으며,
양경주楊倞注궁지기宮之奇나라의 어진 신하이다. 간해도 〈군주가〉 따르지 않아 그의 가족을 데리고 떠나버렸다. 자마子馬는 그의 성명을 알 수 없다.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에 “양공襄公 2년에 제후齊侯나라를 정벌하자 나라 사람이 정여자正輿子로 하여금 〈나라 태감太監숙사위夙沙衞에게 정선精選한 말과 소 각 백 마리를 뇌물로 주게 하였다.”라 하고,
양공襄公 6년에 “제후齊侯나라를 정벌하자 나라 사람이 왕추王湫로 하여금 군대를 거느리고 정여자正輿子와 함께 나라 군대를 공격하게 하였는데, 나라 군대가 그들과 〈교전하여〉 크게 패배시키고 마침내 나라를 멸망시켰다.”라고 하였다.
혹자는 “정여자正輿子의 자는 자마子馬이다. 그가 임용되지 못했다는 말은 들어보지 못했다.”라고 하였다. ≪설원說苑≫ 〈정간편正諫篇〉에 의하면 제어기諸御己 장왕莊王에게 간하기를 “나라는 희부기僖負羈를 임용하지 않아 나라가 병탄并呑하고, 나라는 자맹子猛을 임용하지 않아 나라가 병탄하였습니다.”라고 하였다.
연대를 근거로 살펴보면 나라가 나라를 멸망시킨 일이 장왕莊王 이후에 있었으니, 제어기諸御己가 간한 말이 사실인지 알 수 없다.
노문초盧文弨:‘제어기諸御己’는 옛 판본에 ‘제경기諸卿己’로 잘못되어 있다. 여기서는 ≪설원≫ 〈정간편〉에 의거하여 고쳐 바로잡았다.
학의행郝懿行:≪설원≫ 〈정간편〉에는 ‘자마子馬’가 ‘자맹子猛’으로 되어 있다. 쌍성雙聲이니 한 사람일 것으로 의심되나 ≪설원≫의 내용을 근거로 볼 때 이 사람은 〈나라가 멸망한 시기보다〉 연대가 앞에 있으니, 양씨楊氏 주에서 말한 것이 옳다.
〈앞서 언급한〉 혹자의 설은 ≪춘추좌씨전≫ 양공襄公 23년의 민자마閔子馬를 말한 것이다. ≪춘추세족보春秋世族譜≫에 의하면 민자마閔子馬는 곧 민마보閔馬父이고 나라의 잡다한 사람들 속에 들어 있으니, 혹시 나라가 자기를 임용하지 않으므로 떠나 나라로 가지 않았는가 싶다.
그러나 이 ‘자마子馬’는 ≪춘추좌씨전≫ 소공昭公 18년(B.C.524)에 보이니, 위로 나라가 나라를 멸망시킨 양공襄公 6년(B.C.567)까지는 그 햇수의 차이가 40여 년이다. 그 세대가 뒤로 약간 멀리 있고 또 나라 사람이 아니니, 억지로 끌어다가 맞출 것은 없다.


역주
역주1 猛馬雙聲 : 雙聲은 음운학 용어로서 두 글자 이상으로 된 단어에서 각 글자의 최초 子音이 같은 것을 말한다. 猛의 자음은 ‘m’인데 馬의 자음도 그와 같기 때문에 하는 말이다.
역주2 世族譜 : 淸나라 陳厚耀(1648~1722)가 편찬한 ≪春秋世族譜≫를 말한다.
역주3 係魯雜人 : 閔子馬의 이름이 ≪春秋世族譜≫ 〈魯雜姓氏名號〉에 들어 있으므로 하는 말이다.

순자집해(7) 책은 2023.12.18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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